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복기했을 때 불편했던 대목을 꼽으라면 포고령에 왜 미복귀 전공의 처단 내용을 넣었는지 설명하던 장면을 대고 싶다. “제가 ‘이걸 왜 집어넣었느냐’ 웃으면서 얘기를 하니 ‘어떤 계고 한다는 측면에서 그냥 뒀습니다’ 해서 웃으면서 놔뒀는데, 그 상황은 기억하고 계시죠?”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답을 채근하듯 질문하며 ‘실행 의지가 없던 대국민 호소용 계엄’ 논리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는 이가 가벼이 넣은 말이라서 괜찮다고 여겼다는 인식이 무서웠다. 포고령에 담긴 ‘처단’은 야자(야간자습) 빼먹는 학생 벌하겠다며 꺼내든 몽둥이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윤 대통령의 말과 말 사이 논리의 빈 곳은 이해하려는 노력만으론 잘 채워지지 않았다. 최후 의견 진술에서 ‘끓는 솥 안의 개구리’를 말하며 “벼랑 끝으로 가는 이 나라의 현실이 보였다”고 비장하게 호소한 대목은 포고령을 검토하며 웃었다는 장면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어차피 계엄이란 게 길어야 하루 이상 유지되기도 어렵고…”라던 말은 종국엔 ‘책임 총리제’와 ‘임기 단축 개헌’의 제안으로 치환됐다. 계몽용 계엄을 했으니 그것으로 됐다는 건지, 이후의 대한민국도 구상했다는 건지 많은 이들이 헷갈려 했다.
대신 윤 대통령이 명확히 밝힌 건 반대 세력에 대한 인식이다. 자유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유물론에 입각한 전체주의가 대한민국에 스며드는 것은 막아야 하며, 이런 세력과 타협하고 흥정해선 안 된다고 했다. 최후 의견 진술에서 간첩을 25번, 거대 야당을 44번 언급하며 반대파와 반국가세력을 연결하고 절멸을 선언했다. 사실 윤 대통령은 고(故) 리영희 교수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거론하며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가려 하고, 왼쪽 날개는 뒤로 가려 한다면 그 새는 날 수 없고 떨어지게 돼 있다”(2023년 8월 국민통합위원회 보고회)라고 일찌감치 그런 인식을 드러냈었다.
윤 대통령 사과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제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국민들’ ‘단식투쟁을 하고 계신 분들’ ‘제 구속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으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유감을 표하고 위로를 던졌다. 직무 복귀를 꿈꾸는 대통령이 끝까지 반쪽짜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만 밝히는 듯했다.
윤 대통령의 편 가르기 정치를 두고 혹자는 공화국의 지향과 맞지 않는 말이라고 지적한다. 헌법 1조 1항 민주공화국의 ‘공화(共和)’는 구성원들의 공존을 기초로 하는 말인데, 반대 세력을 절멸하겠다는 건 헌법 가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재 연구관을 지낸 김해원 교수는 편파적 지향이나 파당적 힘이 공동체 내부의 이질성이나 다양성을 몰각하는 건 공화의 이상향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반대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며 끊어내야 한다는 호소는 정치인의 말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공화국 리더의 말은 아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기관이 계엄 사태를 겪은 한국을 ‘결함 있는 민주주의’ 범주로 등급을 하향했다. 보고서엔 “국회와 일반 대중은 한국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존중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의 석방은 그의 승리가 아니다. 탄핵정국 단계마다 절차적 불공정을 말한 그의 변론을 공화국의 체계가 받아들인 것이다. 애초 야당의 폭거를 알리는 일도 공화국의 절차대로 이뤄졌어야 했다. 구치소에서 석방됐을 때 지지자에게 주먹을 쥐어 보일 일은 아니었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