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마음이 암을 키운다

입력 2025-03-11 00:32

암의 어원은 게(crab)를 뜻하는 그리스어 ‘카르키노스’(karkinos)다. 고대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암이 퍼져 나가는 모습이 게의 발처럼 사방으로 뻗어가는 것과 닮았다고 본 데서 유래했다. 현대 의학에서도 암세포는 무질서하게 증식하며 주변 조직을 침범하고 전이하는 특성을 보인다.

암은 단순히 신체적인 질병에 불과할까. 여러 연구가 암의 발생이 정신 건강, 즉 마음의 상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몸은 매일 1000여개의 비정상 세포를 생성하지만 면역계에 의해 대부분 제거된다. 면역계의 핵심인 백혈구, 특히 자연살해(NK) 세포와 T세포는 종양 형성을 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NK 세포는 선천면역계 일부로 비정상 세포를 인식하고 즉각적으로 제거한다. 반면 T세포는 적응면역계에서 작용하며 암세포의 특정 항원을 인식하고 표적화해 공격한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한 감정이 만성화되면 면역 체계가 약화해 이런 비정상 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한다. 이러면 종양이 점점 성장하며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스트레스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몸의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 축)을 살펴야 한다. 만성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부신에서 코르티솔이란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다. 이는 장기간 면역 기능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코르티솔이 높아지면 NK 세포와 T세포의 활성이 저하되고 염증 반응이 증가해 암세포가 성장하는 환경이 조성된다. 또 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해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을 증가시킨다. 이는 암세포의 증식과 전이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 환자 가운데는 발병 수년 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나 감정적 충격을 경험한 경우가 많다. 50대 후반 여성 A씨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 후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었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생활이 무너졌다. 몇 년 후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병력 조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면역 저하가 암 발병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60대 남성 B씨는 오랜 기간 극심한 경쟁 속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과도한 음주와 흡연을 지속했던 그는 결국 위암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생활 습관과 만성 스트레스가 발병을 촉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심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암 발생률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 암 환자가 긍정적 마음을 유지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 치료 효과가 향상되고 생존율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면역학적 기전과 신경내분비학적인 변화로 설명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이다.

정신 건강이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말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스트레스는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다.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다. 중요한 건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기도와 심리 치료, 규칙적 운동과 충분한 수면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면역 기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정한 생활 습관이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최근 연구도 있다.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규칙적 운동이다. 걷기 조깅 수영 등 유산소 운동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NK 세포 활성을 증가시켜 면역력을 강화한다. 둘째는 건강한 식단이다. 올리브유와 견과류, 생선과 채소 등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식단은 염증을 줄이고 면역 기능을 개선한다. 셋째는 하루 7~8시간 정도의 충분한 수면이다. 수면 부족은 면역력을 저하해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 넷째는 스트레스 관리다. 기도, 심호흡 등 활동은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면역 기능을 강화한다. 다섯째는 장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요구르트 김치 된장 등 프로바이오틱스가 풍부한 발효식품은 장내 미생물 균형을 맞춰 면역계를 강화한다. 여섯째는 금연과 절주다. 흡연은 면역 기능을 억제하고 발암물질을 체내에 축적하므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 과도한 음주는 간 기능을 저하해 면역력을 약화한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