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콜비와 미국의 새 전략사고

입력 2025-03-10 00:32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다. 여러 정책이 쏟아지듯 발표되고 언급되는데, 그중 일부는 연기·번복되며 상충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외정책의 일관된 전략적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까. 과연 트럼프에게 거래의 기술 이상의 전략이 있는가.

잘 알려졌듯 지난달 28일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났다. 설전 끝에 젤렌스키가 내쫓기듯 백악관을 떠나는 장면은 충격과 함께 미국이 러시아 쪽으로 심하게 기울었다는 평가를 남겼다.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같은 철권통치자를 오히려 편하게 여긴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러시아가 지금도 우크라이나를 계속 ‘두드리고’ 있다며 휴전과 평화에 대한 최종 합의를 이룰 때까지 금융제재와 관세부과를 강력히 고려 중이라고 썼다. J D 밴스 부통령도 지난달 러시아 압력 수단으로 제재를 언급한 바 있다.

혹자는 트럼프의 행보를 ‘역키신저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러시아와 가까워짐으로써 중·러 사이를 벌리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려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섬으로써 소련과의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차지했던 경험과 비슷하다며 키신저의 이름을 따왔다. 키신저는 당시 닉슨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 시도는 키신저가 아니라 닉슨의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또 1970년대 미·중 관계 개선은 심각한 중·소 분쟁 덕분에 가능했다. 지금처럼 중·러가 ‘무제한의’ 협력에 합의하고 국제적으로 서로 보조를 맞추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역키신저라는 작명은 잘못됐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이 오랫동안 방치하다시피 했던 러시아를 전략적 계산 안에 다시 불러들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가 최종적으로 중국과의 경쟁을 겨냥하고 있다는 설명도 꽤 그럴듯하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속히 끝내고,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에서 싸게 구매하는 에너지 수급도 어려워져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 경제에 추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중국도 미·러 관계개선 조짐에 긴장하는 듯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5월에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인데,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속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미 상원에서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지명자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콜비의 행정부 요직 기용은 새로운 전략적 사고의 등장을 상징한다. 그는 그동안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 힘을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유럽, 중동 등 다른 지역에 대한 군사적 부담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현실주의적 주장은 미국 우선주의 마가(MAGA)운동과 접점을 찾으며, 전폭적 지지로 연결됐다. 밴스가 매우 이례적으로 청문회를 찾아 콜비 지지를 표명하기까지 했다. 이는 전폭적 지원을 표시해 공화당 내 반대 의견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이 유럽과 중동 등에 계속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화당의 전통적 매파 인사들은 콜비의 낙마를 바랐다고 전해진다.

물론 콜비의 기용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얼마나 전략적 일관성을 더해줄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자는 그의 주장이 중국과의 거래를 바라는 트럼프의 본능적 감각과 어떻게 조율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미국에서 새로운 전략 사고의 등장은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기적 변화이므로 예의주시가 필요하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