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혼돈의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제언

입력 2025-03-10 00:34

尹 구속취소 결정문에 적시된
수사의 실체적·절차적 문제점

헌재 결정이 국민 설득 못하면
극심한 혼란 결코 피할 수 없어

국가 리더십 부재, 위기지만
'87 헌법' 바꿀 절호의 기회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가 인용되면서 정국은 변화를 맞고 있다.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통해 내란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에 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내란 수사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무리한 체포영장 청구와 발급, 집행 과정의 혼란으로 영하의 날씨에도 국민의 열정은 오히려 더 뜨거웠다.

이어진 현직 대통령 구속영장 발급의 이유는 어이없게도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다’는 단 한 줄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적부심에서 법원은 범죄가 소명된다면서도 야당 대표란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는데, 현직 대통령은 근거에 대한 설명도 없이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다니….

이에 비해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한 결정문은 청구인 측과 검찰 측의 주장을 따져 ①구속기간이 지나 기소했다는 점, ②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부재, 검찰과 공수처의 근거 없는 구속기간 나눠 쓰기 및 그 과정에서 신병 인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을 체포, 수사, 구속, 기소하는 전 과정에서 실체적·절차적 문제가 있었고, 이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수집된 증거는 물론 수사 및 기소 과정의 불법성으로 인해 김재규 내란 사건의 재심과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언급됐다.

한마디로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불법으로 부실 수사를 했고, 검찰은 그렇게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위법하게 현직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기 때문에 사건 자체가 기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결정의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 아직은 판단이 쉽지 않다. 그러나 야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내란죄 자체의 성립 여부에 근본적 문제가 제기됐고,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탄핵심판 초기 헌재는 탄핵소추 이유서에 포함된 내란죄를 제외하도록 국회 측에 조언 내지 종용했고, 이후 내란죄 검토에 대한 실체적 판단 없이 기소된 군과 경찰의 주요 지휘관들의 수사기록을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거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진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수사기록을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도 문제지만, 헌재는 시간까지 재가며 변론을 진행함으로써 진실의 규명보다 정해진 시간 내에 이미 만들어진 결론을 발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으켰다.

문제는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것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훨씬 능가하는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찬반으로 갈라진 민심은 이미 통합이나 타협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 이유가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국가 비상사태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합헌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더욱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헌재가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치우치지 않고 헌법과 법률을 온전히 해석해 국가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 점에서 최근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원로들이 강력히 권고하고 있는 개헌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지금이 국가의 리더십 부재로 매우 엄중한 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이미 수명을 다한 ‘87년 헌법’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은 그때그때 개인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개헌 카드를 이용만 했을 뿐,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개헌을 주장하지 않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권력구조를 포함한 개헌을 통해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미 오랫동안 개헌을 논의해 왔기에 이제는 주요 이슈에 대한 선택만 남은 상태다. 탄핵이 기각돼 대통령직에 복귀해도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힌 윤 대통령이다. 이는 곧 조속한 개헌 이후 사임을 약속한 것으로 해석된다.

파면을 통한 갈등과 혼란의 지속이냐, 아니면 합의 개헌을 통한 안정적 미래냐. 이제 헌재에 이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