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유업

입력 2025-03-10 03:11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아브람에게 익숙한 고향을 떠나 가나안이라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고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함께 고향을 떠났던 조카 롯마저 늘어난 재산으로 인한 분쟁 끝에 그를 떠나게 되었을 때 아브람의 마음은 무척이나 허전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창 13:14)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이 문장에는 ‘간청하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마치 아브람에게 “제발 눈을 들어 바라보아라” 하고 강권하시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그 땅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관점으로 바라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람이 매일 바라보는 그 땅은 여전히 낯설고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을 그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에게는 이 약속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 가지 현실적인 장벽이 있었습니다.

첫째 그는 이미 노인이었고 한 명의 자녀도 없었습니다. 둘째 당시 가나안 땅은 비어있는 땅이 아니라 여러 왕들이 소유하고 다스리던 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땅을 자신의 유업으로 바라봐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땅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조금씩 소유권을 확보하라고, 강한 왕이 되어 전쟁을 통해 땅을 차지하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17절에서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현실적으로는 한 명의 자녀도 없고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한 아브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시선으로 그 땅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믿음의 조상이 된 그의 첫걸음이었습니다.

독일어로 ‘상상하다’는 ‘아인빌둥스크라프트(einbildungskraft)’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로 통합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성도는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과 하나님의 약속을 통합해 하나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현실을 바라볼 때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우리도 잠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상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 교회 직장 일터 그리고 조국을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말씀하시며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아브람은 그날 이후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땅을 바라보며 살았고 결국 그 땅은 그의 자손들의 유업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가능해 보이는 삶의 영역일지라도 믿음의 상상력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우리의 유업인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서나 시작될 것입니다.

김명규 씨앗교회 목사

◇씨앗교회는 독립교단 소속으로 교인의 약 90%가 20~40대 청년층으로 이뤄진 젊은 교회입니다. 김명규 목사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문화신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FNC 엔터테인먼트 사목을 역임했으며 현재 씨앗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