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년 ‘의대 증원 0명’… 의료 개혁 후퇴다

입력 2025-03-08 01:30
연합뉴스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이 결국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졌다. 학교와 병원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가 1년 넘게 돌아오지 않자 정부가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복귀 약속도 없이 먼저 의대 증원을 원점으로 되돌린 건 ‘의료 개혁’의 실패를 자인한 꼴이다. 이번에도 의사들에게 항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버티기에 들어간 의사들이 또 이겼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이다. 앞으로 정원 논의 과정에서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돌려놓고, 2027년 이후 정원은 앞으로 구성될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에서 의료계 등과 정하겠다고 밝혔다. 의대생들이 3월말까지 전원 복귀하지 않으면 이를 백지화하겠다는 조건부 수용이다.

24·25학번 의대 교육 과정 운영 및 지원 방안도 공개했는데, 24학번의 경우 25학번보다 빨리 본과에 진입하게 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이는 작년 24학번이 휴학하면서, 올해 1학년은 24학번과 신입생인 25학번을 포함해 최대 7500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학기를 건너뛰겠다는 것인데 명백한 편법이자 특혜다.

지난 1년여간 의료 공백으로 큰 희생을 야기하면서까지 27년 만에 늘려놓은 2025학년도 인원은 4567명이었다. 의대 총장·학장단의 안을 정부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띤 이 안대로라면 1509명이 줄어들어 2024학년도로 되돌려진다. 의료계의 집단 행동에 의료 개혁이 좌초되는 또 한 번의 선례를 남기게 되는 셈이다. 김대중·박근혜·문재인정부 당시에도 의료 개혁이 추진됐지만 그럴 때마다 의료계의 ‘집단 파워’에 밀려 물거품이 된 전철을 다시 밟게 되는 것이다.

당장 급한 불을 껐다 해도 2027학년도 이후 정원 논의 과정에서 의정 갈등이 되풀이될 개연성이 높다. 의료계는 정원 동결이나 감축을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와의 마찰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의료 공백과 의사 부족 해소를 기대하며 1년여간 고통받고 인내한 국민과 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이 원하는 건 진정한 의료 개혁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의대 증원 문제 등을 풀어 가겠다는 당초의 대원칙을 지키기 바란다. 원칙을 깨고 전공의와 의대생의 실력 행사에 또다시 굴복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