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와의 조기 종전을 압박하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자유 진영을 등지고 적대국인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면서 기존의 국제 질서를 뒤엎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의 대표적 군수·국방예산 전문가인 마크 컨시언(사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4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의 동맹국 보호 의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국가마다 핵무기를 획득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전선을 그대로 유지하는 휴전 형식으로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해병대 예비역 대령인 컨시언 고문은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전력구조·투자부서 책임자로 일하며 핵무기 개발 및 비확산 활동, 국방예산 전략 등을 담당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의 군사 지원 중단이 지속되면 우크라이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미국의 지원이 중단되면 우크라이나의 무기·탄약·보급품 조달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 러시아군의 공격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이 끊기면 우크라이나군 전투력이 점차 약화될 것이다. 내 예상으로는 2~4개월은 버틸 수 있겠지만 이후 전선이 무너지고 러시아군이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러시아와 조기 종전을 추진하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야심을 더욱 키우고, 북핵 위협이 있는 한국의 안보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그런 우려는 타당하다.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미국이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이 지역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전달될 경우 중국은 대만 통일 문제에서 더욱 과감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로 핵무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공격에 취약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불행히도 이런 해석이 완전히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러시아는 훨씬 더 큰 부담을 안고 침공을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 핵무기는 결국 국가 주권을 보장하는 궁극적인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시각은 한국과 일본에서 핵무장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
“핵무장 추진은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과 미국의 동맹국 보호 의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여러 국가에서) 핵무기를 획득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을 갖게 됐다.”
-트럼프는 광물협정만으로 우크라이나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경제협정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안전 보장이 되지는 않는다. 경제협정은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경제적으로 더 밀접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군사적 보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경제적 관계가 있던 나라들이 공격받은 사례는 많다.”
-우크라이나가 한국전쟁을 떠올리게 한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미국은 한국에 확실한 안전 보장을 제공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반면 지금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같은 수준의 안전 보장을 제공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다만 여러 유사점도 있다.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끝났고, 공식적인 평화협정 없이 당시의 전선이었던 곳에서 전투가 멈췄고 그곳이 현재의 군사분계선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유사한 방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조기 종전에 강하게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럼프는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없는 교착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불필요한 파괴와 희생이 더 커지기 전에 협상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뿐만 아니라 많은 전략가들도 공유하는 시각이다. 또 트럼프는 이 전쟁을 민주주의와 세계 질서를 위한 싸움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유지하는 형태로 전쟁이 마무리되는 게 러시아에 대한 보상으로 비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이 안전 보장에 도움이 될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적절하다고 여길 만한 안전 보장을 유럽이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푸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평화유지군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토가 아닌 다른 국가의 평화유지군이 파견될 가능성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무기 지원이다. 유럽 국가들이 대량의 무기를 계속 공급한다면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재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젤렌스키는 여전히 나토 가입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유럽이 제공하는 대안도 만족스러울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는 무엇일까?
“선택지가 많지 않다. 결국 트럼프와 협상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협상이 우크라이나에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이뤄질지 여부다. 미국이 지원을 재개한다 해도 우크라이나는 이미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