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분야 의료사고, 유족 동의땐 사망해도 처벌 면한다

입력 2025-03-07 02:08
조규홍(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에 한해 의료사고에 따른 형사처벌을 줄여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중대 과실로 인정된 경우만 재판에 넘기고, 유족 동의가 있다면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번 방안을 마련했지만, 환자 단체들은 피해자의 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다며 우려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6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부안을 발표했다. 강준 의개특위 의료개혁총괄과장은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의료사고 피해를 입은 환자·유족에겐 실질적인 회복을 지원하겠다”며 “최선을 다해 진료한 의료진에겐 법적 보호를 통해 필수과 기피를 해소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의료 소송과 장기간 수사는 의료계의 큰 골칫거리였다. 과도한 형사·민사소송이 의사의 소신 진료를 막고 필수과 기피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았다. 토론회에 의료계 패널로 참석한 이성순 일산백병원 교수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기소되면 지원자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법리스크가 불러온 피해는 결국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와 국민이 모두 떠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안의 핵심은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설치해 필수의료 의사에 대한 형사 특례를 심의하도록 한 것이다. 의사의 소송 부담을 덜기 위해 처벌 기준을 환자의 피해 정도에서 과실의 경중으로 바꾸고 심의위가 개별 판단하기로 했다. 150일 안에 신속하게 결론을 내린 뒤 경찰과 검찰에 기소 자제 등을 권고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하기로 했다. 또 환자가 중상해를 입더라도 의사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기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도 폭넓게 인정키로 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 분야에 한해서 의사가 유족 전원과 합의한 경우 환자가 사망했더라도 처벌받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원활한 의료사고 합의를 위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을 촉진하기로 했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전한 유감·사과의 뜻이 이후 재판 과정에서 과실을 인정하는 증거가 되지 않도록 제한한다. 또 의학·법률 지식이 부족한 환자들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도록 환자 대변인제를 신설한다.

환자·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필수 의료의 범위는 넓고 중과실 범위는 좁아서 과도한 형사 면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정부가 ‘기소 자제’ 표현을 사용했지만 결국 불기소 처분이 남발될 것”이라며 “불명확한 필수의료 개념을 토대로 형사 특례를 적용하면 피해자는 법적으로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형사책임 면책은 의료기관의 책임 보험 가입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 참여를 전제로 한다. 정부는 의료기관의 책임 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하되 고위험 필수과에 대해선 보험료를 국고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또 현재 진료과별로 10배 이상 벌어진 보험료 격차도 줄여나갈 계획이다.

의협은 입장문을 내고 “(책임 보험 가입 의무화는) 사실상의 준조세 부과”라면서 “필수의료 관련 재원은 국가가 전액 부담하고, 형사 면책과 같은 유인책이 동시에 도입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