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러시아에 맞서 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프랑스 핵우산론’을 꺼냈다. 프랑스가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일한 핵보유국으로서 유럽 안보 강화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안 마련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국이 우리 편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며 “독일 차기 총리의 역사적 요청에 따라 프랑스의 핵 억제력으로 유럽 대륙의 동맹국을 보호하는 것에 대한 전략적 논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독일 새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가 미국이 유럽의 안보를 포기할 경우에 대비해 프랑스와 영국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핵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르츠 대표의 요구에 마크롱이 적극 화답하면서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조짐이다. 다만 프랑스의 핵 교리가 기본적으로 ‘방어’에 맞춰져 있다는 문제가 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는 290개로 추정되는데, 러시아(5580개)와 미국(5044개)에 비해 월등히 적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핵 공격을 당했을 때 ‘자국 멸망’을 전제로 하고 적국의 주요 도시에 궤멸적 피해를 주는 ‘비례 억지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핵우산 확대는 타국을 위해 자국의 멸망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프랑스 내에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극우 야당 국민연합(RN)은 프랑스의 핵 억지력은 프랑스를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크롱은 이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결정권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손에 있다”며 “프랑스의 핵 억지력은 이웃 국가들보다 우리를 훨씬 더 보호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멈출 것이라고 누가 믿을 수 있나. 러시아의 위협에 방관자로 남아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프랑스와 유럽의 국방력 강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마크롱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대해선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수는 없고 너무 취약한 휴전 협정이 이뤄져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우크라이나가 다시 러시아의 침략을 받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며 그 방안으로 유럽 평화유지군 파견을 제시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