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그려진 상자를 든 두 명의 남성 청년이 잇몸을 드러낸 채 꽃보다 환하게 웃었다. 상자 안에는 생리대 영양제 비누 등 여성 청소년의 건강을 위한 생필품이 담겼다. 400만원. 두 사람이 취약계층 가정의 여성 청소년을 돕기 위해 지난해 봄부터 1년 동안 모금한 후원금이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동백꽃 선물함’을 선물한 이들은 32살 동갑내기 친구인 김도형 장상우 럽딜리버리 공동대표다.
“8년 전이었을 거예요. 둘 다 배달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었죠. 목포에 같이 놀러 갔었는데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어요. 있는 건 시간뿐이어서 무궁화호 기차에 몸을 싣고 올라오는 길에 얘길 나눴죠. 나중에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후원 단체를 만들어 보자고요.”(장 대표)
고등학생 시절 교회 친구로 연을 맺은 두 사람은 ‘N잡러’(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다. 장 대표는 식품 공장에서 일하면서 나머지 시간에 연기학원에서 취미반 학생들을 가르친다. 본업이 배우인 김 대표는 공연기획자, 레크리에이션 진행자로도 활동 중이다. 시간을 쪼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두 사람이 공동대표 직함을 하나 더 추가한 건 8년 전 꿈꿨던 대로 재미있는 후원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럽딜리버리를 세운 뒤 ‘플로깅하며 쓰레기 담은 쌀 포대 개수만큼 독거 어르신에게 쌀 기부하기’ ‘다문화가정 아동과 함께하는 피자 파스타 만들기’ 등을 진행해 왔다.
김 대표는 “10년 전 교회에서 지체장애인 역할을 맡아 성극에 참여한 뒤 ‘내 주변의 장애인을 돕는 작은 일부터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교회 내 휠체어 장애인 성도를 위한 별도의 교회 이동용 차량을 운행하고 셀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 느꼈던 보람이 럽딜리버리의 출발점”이라며 웃었다.
‘동백꽃 선물함’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청소년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위생용품을 지원하는 굿피플(회장 김천수)의 대표 캠페인이다. 2019년 장 대표가 케냐에서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캠페인에 대해 들은 것이 인연이 됐다. 두 사람은 명절(독거 어르신)과 연말(다문화가정 아동)에 단발성으로 돕는 것을 넘어서는 첫 장기 프로젝트로 여성 청소년을 돕는 이 캠페인을 택했다.
장 대표는 “삼남매 중 막내로 자라며 내 삶에 큰 영향을 줬던 사람들이 두 누나와 어머니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여성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면서 “다음 달엔 장애인의 날(4월 20일)에 맞춰 인식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등 앞으로도 재미있는 후원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지난 1년 동안 모금한 전액을 이번 캠페인에 전달해 럽딜리버리의 통장은 다시 ‘0원’이 됐다”며 “거창하진 않아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담아 사랑의 손길을 배달하는 ‘프로 배달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