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백종만 (6) 새벽기도 열심이던 시골 소년이 매산고 총학생회장에

입력 2025-03-07 03:02
백종만(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YPP 회장이 전남 순천 매산고등학교 재학 시절 수학여행을 가서 기념촬영하는 모습. 백 회장 제공

고등학교 2학년 말쯤 되니 3학년 선배들이 나에게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라고 권했다. 그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선배들은 매우 어른스러웠고, 지금 생각하면 지방 도시 ‘조폭 막내’처럼 보였던 형들도 제법 많았다. 그런 선배들이 내 등을 떠밀었다. “종만아, 네가 회장을 안 하면 누가 하냐. 너는 진짜 회장감이다.”

“선배님, 저 같은 촌놈이 총학생회장이라니요. 저는 그런 거 할 생각이 애초에 없습니다.” 총학생회장이 되는 조건은 평균 성적 85점 이상. 성적은 문제없었지만, 나 같은 시골 변두리 출신 학생이 회장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당시 매산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고 야간 중고등학교도 있어서 전교생은 어림잡아 2000명이 넘었다.

하지만 사양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은 나를 밀어주며 선거운동을 했다. 결국 나 포함 세 명이 총학생회장에 출마했다. 다른 두 친구는 순천 시내 출신이었다. 그러니 내가 회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할 수밖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과반수가 안 되면 2차 투표를 진행해야 하는데, 1차 투표에서부터 내가 전체 표 3분의 2를 획득해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참샘마을 시골 소년이 매산고 총학생회장이 되다니.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친구들이 축하해줬다.

총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처음 한 일은 취임식 연설이었다. 매주 수요일에 전교생이 채플 수업을 들으러 강당에 모이는 자리에서 연설해야 했다. 이래저래 준비해서 단 위에 올랐다. 그런데 강당 뒤편 2층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였다. 어머니께는 당선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그 자리에 오셨을까.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줄곧 지켜보셨다.

지금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그때만큼 열심히 생활할 수 있을까 싶다. 운동 음악 공부, 할 수 있는 건 뭐든 열심히 했다. 그중에서도 항상 놓지 않았던 건 신앙생활이었다. 특히 새벽기도에 열심을 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모님이 순천 시내로 이사를 온 덕에 한동안 그 집에서 통학했다. 이모님 댁에서 20분 거리에 순천동부교회가 있었다. 나는 매일 그곳에서 새벽기도를 드렸다. 옛날에는 종을 쳐서 기도회나 예배 시간을 알렸다. 이모님 댁 근처에 교회가 몇 군데 더 있었는데, 교회마다 새벽종 치는 시간과 소리가 조금씩 달랐다. 나는 새벽 4시에 깨어 공부하다가 4시 반쯤 동부교회 종소리를 구분해 듣고 교회에 갔다.

새벽기도회와 관련한 여러 추억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밤새 눈이 내려서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눈길을 뽀득뽀득 밟으며 기도하면서 걸을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훗날 새벽기도를 서원하고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제단을 쌓아올 수 있는 것도 학생 때 새벽기도 하던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인 듯하다. 새벽에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로 여는 하루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