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주의 피전포지라는 마을에는 곳곳에 놀이공원이 있다. 지난해 그곳에서 낯선 광경을 마주했다. 분명 놀이공원인데 아이들보다 노인이 더 많았다. 백발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다음에 탈 놀이기구를 고르고 있었다. 회전목마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도 보였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는 노인도 있었다. 놀이기구 앞에 선 그들은 마치 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했다.
이곳은 느린 걸음으로 30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질주하거나 자이로드롭처럼 고공에서 낙하하는 놀이기구보다 느리고 단순한 탈거리가 많다. 걷다 지치면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 분수쇼를 보면 된다. 노인들이 즐길 만한 것들이 풍성하게 채워져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놀이공원이라니.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른바 ‘어른이대공원’ 같은 곳이 생긴다면 어떨까. 이쯤에서 놀이의 효능에 대해 따져보자. 우선 놀이는 몸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근력이나 심폐지구력 등 신체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당연히 노인에게 유익하다. 블록을 쌓거나 퍼즐을 맞추는 놀이를 하려면 깊게 생각을 해야 한다. 집중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 한숨이 많아진다. 패기 있고 열정적이던 젊은 시절에 비해 지금은 쓸모없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놀이는 이런 이들에게 성취감을 준다. 이뿐이랴. 은퇴 후 마땅히 대화할 이가 없어 외로운 노인은 놀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어쩌면 놀이는 아이보다 어르신들에게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제 나이처럼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예순인데 여든처럼 보이는 이가 있는 반면 여든인데 예순처럼 보이는 노인도 있다. 둘의 차이는 상당 부분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엘렌 랭어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말한다. 그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70·80대 노인을 모아 젊은 시절 입었던 옷을 입고 그 시절 들었던 노래를 듣게 했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설거지와 빨래를 직접 하게 했다. 수십 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 모든 걸 그때처럼 행동하게 하자 참여자들의 신체 기능이 생물학적 나이보다 어려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랭어 교수는 말한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건 신체가 아니라 신체적인 한계를 믿는 사고방식이라고. 고작 43세밖에 안 됐는데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건 벌써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해서다. 마흔이 됐을 때 언제 이렇게 늙었지, 생각했었다. 서른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왜 그렇게 끊임없이 늙은 기분으로 사는 걸까. 시인 황인숙은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그렇다’고 통찰했다. 그래서 칠순 할머니는 환갑의 여인에게 말한다.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바꿔 생각해서, 지금까지 산 날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을 놓고 보면 오늘의 내가 가장 어린 나이다. 일본에는 ‘적추(赤秋)’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붉은 가을이란 의미다. 푸른 봄인 ‘청춘(靑春)’이 지난 뒤에 오는 이른바 노년의 청춘이다. 늙었다는 생각을 멈추고 놀이공원에 나갈 채비를 하자.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진짜’ 놀이공원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놀이공원을 만들어 보자. 놀이의 효능을 언급할 때 빼먹은 게 있는데, 놀이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데 유용하다고 한다. 실패하거나 힘들 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다. 어린이대공원 말고 ‘어른이대공원’에 가서 회전목마도 타고 회오리감자도 먹으면서 구부정해지는 마음을 곧게 한 번 펴보는 거다.
이용상 산업2부 차장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