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신춘의 봄나물

입력 2025-03-07 00:35

날이 풀려 이제 봄이 다 왔다 싶었는데, 느닷없이 춥다. 패딩을 다시 꺼내 입고 장 보러 나간다. 때마침 마트 직원이 푸릇한 미나리 몇 단을 오토바이에 싣는 중이다. 그 모습을 보니 돌연 봄 내음 물씬 나는 나물을 입안 가득 욱여넣고 아귀아귀 먹고 싶다.

달래장을 만들어 볼까? 어린아이 머리카락을 묶듯, 달래가 한 움큼씩 노란 고무줄에 묶여 있다. 약간 질게 지은 콩나물밥에 달래장을 얹어 김에 싸먹어도 좋겠지. 옆 매대에 미나리도 질세라 기세가 싱싱하다. 부침가루를 조금만 넣고, 바싹하게 구운 미나리전을 떠올리니 군침이 돈다. 좀체 봄나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고, 눈치 빠른 직원이 머위도 첫물이라고 추천한다. 잎이 여려서 살짝 데쳐야지, 안 그러면 허물어진다고 요령까지 덧붙인다.

시골에 살았던 터라 이런 식재료가 귀한 줄 모르고 자랐다. 산과 들에 봄나물이 지천이었다. 어릴 적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식재료가 웰빙이네, 뭐네 하면서 각광받는 것이 되레 신기했다. 빵빵하게 봉지가 차도록 쑥을 캐도, 삶고 나면 한 줌밖에 되지 않았다. 식재료비를 아낄 요량으로 나물을 캐던 언니들도 떠오른다. 새로 부임한 교생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해쑥처럼 웃던 동네 언니들. 사는 형편도 고만고만해 대다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객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들불이 까맣게 지나간 자리에 올라오던 쑥과 냉이, 씀바귀. 그래서 이맘때 봄은 온화하고 찬연한 날씨가 아니라 코끝이 조금 시린 소슬한 추위로 기억되나 보다.

오로지 쑥과 된장, 청양고추로만 끓여낸 맑고 향긋한 쑥국을 떠먹고 싶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달게 비워내고 싶다. 새삼 감탄한다. 나를 키운 먹거리가 이토록 푸르고 향기로운 것이었나. 시간이 흘러도 자연에서 온 것들이 이토록 뭉근한 감미로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반복되지 않는 시간에 대한 허기일까. 그리움일까.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