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역사’나 ‘~사(史)’라고 하면 솔직히 대부분 따분하고 어렵다. 책의 제목도 ‘경제학의 역사’다. 하지만 기존의 편견을 깨듯 책은 재밌고 간결하다. 그렇다고 수박 겉핥기식도 아니다. 경제학의 핵심 개념과 이론을 역사의 흐름을 좇아가며 재밌게, 그리고 ‘적당히’ 깊이 파고든다.
우선 경제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첫 장은 서아프리카의 빈곤국 부르키나파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나라에서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청년은 전체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아이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열두 살 된 여자아이는 수학이나 언어를 배우는 대신 가족이 사는 오두막으로 물동이를 나른다. 저자는 “여러분은 자신이나 가족이 특별히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책을 사고 글을 읽는 걸 달나라 여행가는 일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영국(저자는 영국인이다)에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필요한 학교 건물과 책, 선생님이 있는데 부르키나파소에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경제학이라고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유재산을 부정(플라톤)했고,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물건을 사고팔아 이익을 내는 행위에 거부감(아리스토텔레스)을 보였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중세 철학자들 역시 물건을 사고팔기 위한 교환수단으로만 돈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가 절도와 같다고 여겼다. ‘좋은 사회’를 위해서는 ‘사익 추구’는 배제돼야 했다. 17세기 절정을 이룬 중상주의자들은 도덕보다는 자원과 돈을 강조했고, 부를 추구하는 행위가 성경의 가르침(‘좋은 사회’)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를 걱정하지 않고 ‘사익 추구’에 힘을 쏟았다. 둘은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1776년 펴낸 ‘국부론’에서 ‘사익 추구와 좋은 사회가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애덤스의 이론을 축구팀을 예로 들면서 설명한다. 축구 경기에서는 골을 넣겠다고 혼자 공만 몰고 다니는 선수만 있다면 그 팀은 승리할 수 없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대로 사회에 적용한다면 빵집 주인은 돈을 벌려고 애쓰기보다는 이웃들이 음식에 먹을 빵이 충분한지 확인하고, 정육점 주인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친구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직원으로 고용해야 사회는 화합의 장이 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생각을 뒤집었다. 그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때 사회가 잘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는 말한다.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이 선행을 베풀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이익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책은 경제학의 가장 잘 알려진 개념인 수요와 공급의 이론을 확립한 알프레드 마셜, 현대 거시경제학의 기초를 마련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창조적 파괴’ 개념으로 유명한 조지프 슘페터, ‘개발 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아서 루이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한 밀턴 프리드먼 등 경제사의 굵직한 인물들을 빠짐없이 소개한다. 적절한 예시와 경제학자 개개인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곁들인다.
경제학의 큰 줄기를 잡은 경제학자들은 대개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었고, 모든 사람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장은 잘못됐고, 사람들도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저자는 애교 섞인 변명을 하기도 한다. 경제학 원리를 이용해 장기 매매를 하지 않고도 이식받을 장기의 수를 늘리는 방법을 고안해 낸 앨빈 로스,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해 탄소 배출량에 세금 부과를 제안한 윌리엄 노드하우스 등 경제학을 통해 현실 속 구체적 문제를 해결한 경제학자들도 있지 않았냐고.
현대 경제학의 대부분은 분배보다는 효율에 초점을 맞춰 왔다. 대개 경제학이라고 하면 주식시장, 산업, 기업가의 의사 결정 내용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경제학자는 차가운 머리와 따듯한 가슴을 갖춰야 한다”고 했던 알프레드 마셜의 표본이 되는 경제학자로 인도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을 꼽는다. 센은 국가의 국민소득과 함께 교육수준, 문맹률, 평균수명 등을 포함한 ‘인간개발지수’를 고안해, 인간 발전 정도와 선진화 정도를 평가했다. 저자는 “센에게 경제학은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다양한 내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인간 사회가 잘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들이 행복과 만족을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을 진정으로 번영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경제학이 시작되었고, 그 모든 논쟁과 의견 차이를 거쳐 현재 경제학은 다시 한번 출발점에 서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정의하는 경제학은 이렇다. “경제학은 사람이 생존하고 건강하게 살고 교육받는 방법을 찾는 걸 돕는 학문이다.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지, 왜 누군가는 그것을 얻을 수 없는지 연구한다.” 근본으로 돌아갈 때다.
⊙ 세·줄·평★ ★ ★
·쉽고 간결하지만 얕지 않다
·경제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겠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리해 볼 수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