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시장이 안 좋을 때 관객들이 저희 영화를 많이 봐주시면 ‘인간 승리’나 ‘기적’ 같은 키워드가 등장하겠죠.”
최근 서울 강남구 바이포엠스튜디오 사옥에서 만난 김혜영 감독이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영화 ‘극한직업’ ‘바람바람바람’ 등에서 이병헌 감독과 손발을 맞춰 온 김 감독은 지난달 26일 첫 번째 장편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괜괜괜)를 선보였다.
김 감독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서 인생을 좀 더 알게 됐을 때 ‘별것 없는 이야기’를 아주 울림 있게 전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며 “‘언젠가 꼭 해봐야지’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제안받고는 ‘지금 한 번 해볼까’하는 쓸데없는 용기가 생겼고, 내가 그런 깜냥이 되는 사람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처음 연출을 결심한 순간을 돌이켰다.
‘괜괜괜’은 외로워도 슬퍼도 늘 에너지가 넘치는 고등학생 인영(이레)과 어쩌다 한집에 살게 된 외로운 완벽주의자 설아(진서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설아와 인영은 예술단 단장과 단원으로 만났다. 여기에 예술단의 ‘센터’로서 늘 압박감에 시달리는 나리(정수빈), 인영의 남사친 도윤(이정하), 약 처방보단 ‘말 처방’이 특기인 괴짜 약사 동욱(손석구) 등이 가세해 ‘혼자서는 서툴지만 함께라서 괜찮은’ 이야기가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만들어졌다.
김 감독은 “개봉을 너무나 오래 염원했다. ‘개봉하는 게 어디냐’고 생각했는데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이제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좋겠다”면서 “2021년 촬영했는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배급사를 못 찾으면서 개봉이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촬영하고 바로 개봉했으면 30대 여성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말맛 살리기로 유명한 이병헌 감독과 작업한 김 감독은 그 장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는 “배우들을 돋보이게 하는 게 좋다. 상황보다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캐릭터 플레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이 감독님의 느낌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아무래도 오래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1982년생인 김 감독은 2005년 여름부터 영화 현장에서 일했다. 극작과 출신인 그는 처음에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지만 현장이 좋아 꿈도 바뀌었다.
그는 “이야기를 책임감 있게 전하는 직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힘든 순간도 많고, 졸린 순간은 더 많지만 그 모든 힘듦을 뛰어넘을 만큼 영화는 재미있다”면서 “스태프와 배우들이 날 믿어주는 것, 나라는 감독이 작품을 잘 완성시켜 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감동적이다. 감독이 되길 잘했다고 매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시장이 침체돼 있어 감독으로서 책임감과 무게감이 더 느껴진다고 그는 말했다 김 감독은 “감독이 제 역할을 못 했을 때 너무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고생한다. 영화가 잘 돼야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보답이 될 텐데, 이제 겪어봐야 알 것”이라며 “작품을 홍보할 땐 어쩔 수 없이 감독과 주연 배우가 주목받지만 가장 박수받아야 하는 분들은 보이지 않는 데서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분들”이라고 감사함을 표시했다.
김 감독은 데뷔작인 이번 영화로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받아 영화계에서 더욱 화제가 됐다. 수상 소감을 묻자 김 감독은 “잠시 천국에 다녀온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비웃음만 살 것 같아 작품을 조용히 제출했다. ‘해볼 만큼 해봤다’는 데 의의를 두자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이메일로 초청 소식을 받았을 때 눈물이 쏟아져 펑펑 울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영화를 만들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는데, 그 표현의 의미를 그때 처음 제대로 알게 됐다. 나라는 사람을 믿고 기다려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할 말이 생겼다는 게 정말 좋았다”며 웃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