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과실 의료사고 면책안 “과도한 특혜” “의사만 독박” 격론

입력 2025-03-05 19:01 수정 2025-03-05 19:03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 입장발표’가 진행된 5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강당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의료사고와 관련한 의사 기소를 제한하는 것은 부당한 특례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방안’ 발표가 임박하자 의료계와 환자·시민단체들의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같은 필수의료 분야를 외면하지 않도록 의료사고를 야기한 의사들의 형사책임을 덜어주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환자 측은 지나친 특혜란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형사책임을 줄여야 필수의료 분야가 외면받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 개혁의 하나로 추진하는 이번 방안이 의·정 갈등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할지, 더 꼬이게 할지 주목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5일 서울 종로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 방안은) 의료사고 피해자 보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의료진에게) 지나친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6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의료사고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의료계는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과도한 형사·민사소송에 휘말리고 있고, 이로 인해 의사들이 필수과를 피하게 된다고 주장해 왔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필수과 의사에 한해 의료사고에 대한 처벌을 감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심의를 통해 중대 과실이 있는 의료사고만 제한적으로 기소한다는 것이다.

환자 측은 반발하고 있다.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박호균 변호사는 “스포츠 분야 아마추어 선수들도 경기 중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했을 때 중과실이 아니어도 ‘업무상과실’이 인정되면 처벌받는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규정을 의사에게만 적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평등원칙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필수과 의사들이 빈번하게 형사처벌받고 있다는 주장도 부풀려졌다고 지적했다. 이정민 변호사는 “의료사고로 형사책임을 무겁게 진 경우는 대부분 비필수 분야인 미용·성형 의료 영역에서 사망, 중상해를 초래한 의사들”이라며 “과거 20년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를 보면 형사 기소는 연간 15건 내외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현장에서 겪는 소송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허윤정 단국대병원 외상외과 교수는 앞서 국회 토론회에서 “최근 판결문을 보면 전공의가 단독으로 법적 책임을 지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며 “의료사고에 연루됐을 때 완전한 면책까지는 힘들더라도 단독 책임은 묻지 않거나 감형 등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대 응급의학과 고연차 전공의 절반 이상이 수련 과정에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조사 결과도 거론됐다.

정부는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같이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이날 의개특위와 간담회를 열고 “소송에 의존하는 의료사고 분쟁 해결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우리 의료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며 “의료 정상화를 위해 의사협회와 전공의 단체도 논의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