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과 희생·생명의 순환 담담히 묘사

입력 2025-03-07 01:57

“이슬에 멱 감은 풀잎. 소는 그 풀을 먹고 배가 둥둥 부른다. 참으로 편하다. 소는 그래서 바보 같다.” 맞다, 소는 참 바보다. 무거운 달구지에 짐을 실어다 주고,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아도 쟁기를 끌고, 주인이 계속 바뀌어도 늘 주인을 그리워한다. 어느 날 소는 볏단을 가득 실은 달구지를 끌고 가다 개울둑 밑에 그루박아 버렸다. 소는 허리와 한쪽 뒷다리를 다쳤다.

주인 손에 이끌려 뒷다리 하나를 절뚝거리며 장길을 걸었다. 이 길이 마지막 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소는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봉사하는 일은 되도록 값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눈물을 떨구면서도 그동안 좀 더 부지런히 일하고 싶었던 것은 주인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 것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숙명, 희생, 그리고 생명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담담하게 담아낸 권정생의 동화에 서정적이고 힘 있는 그림이 입혀졌다.

맹경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