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풍력 기자재 기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 풍력발전 정책 영향권에 들었다. 미국 내 풍력발전 프로젝트가 속속 취소되면서 관련 사업에 납품하기로 했던 국내 기업의 계획이 흐트러졌다.
5일 업계에 따르면 CS윈드는 지난해 11월 수주했던 미국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공급계약이 해지됐다고 전날 공시했다. CS윈드 측은 “지난달 28일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공급계약 해지 통보서를 받았고, 즉시 계약종료 효력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한국 풍력 기자재 업체가 트럼프 행정부 ‘풍력발전 죽이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1월 20일 손가락으로 풍력 터빈이 도는 모습을 흉내 내며 “크고 흉한(ugly) 풍력 터빈이 주변을 망친다”며 “우리는 풍력발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 풍력발전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 관할 영해·영토 내 풍력 프로젝트 관련 허가·임대·대출에 대한 신규·갱신 신청을 모두 중단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지난해 12월 허가한 ‘라바리지 풍력발전 프로젝트’의 개발도 일시적으로 금지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풍력을 강력히 비판해 왔으나, 이번 행정명령은 예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규모”라고 평가했다.
이에 프랑스 에너지 대기업 토탈에너지스는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뉴욕 해안에서 추진하던 해상풍력 발전소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미국 해상풍력 시장 진출 이후 17억 달러(약 2조5000억원)의 손실을 본 덴마크 오스테드는 지난달 2030년까지 투자 계획을 25% 감축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풍력 프로젝트는 대개 연방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며 “복잡해진 행정 절차로 인해 풍력발전 프로젝트가 사실상 마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기자재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서의 추가 수주를 통해 미국발 매출 공백을 보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2026년부터 유럽 해상풍력 시장이 본격적인 공급 부족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이 상황을 활용한 신규 수주 확보가 중요해지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