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이자 현대 문학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제1차 세계대전 후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책은 그가 1921년부터 6년간 머무르던 프랑스 파리 시절을 담고 있다. 그에게 파리는 가난과 배고픔의 시절이었지만 행복했고,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키우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던 시기였다. 당시 파리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예술의 중심지였다. 달러에 비해 프랑스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생활비가 저렴한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다양한 예술인들과 교류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미국 작가이자 많은 예술인을 후원했던 거트루드 스타인이였다.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도 그와의 대화에서 나왔다. 파리의 정비소에 자신의 차를 맡긴 스타인은 청년 수리공의 성의 없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항의하자 정비소 주인은 그 청년에게 “자네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야”라고 호통쳤다. 스타인은 헤밍웨이에게도 “자네도 마찬가지야”라며 “자네들은 존중심이란 게 없어. 죽도록 술만 퍼마시고”라고 핀잔을 줬다. 헤밍웨이는 반박했지만 그의 첫 장편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926)에서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는 문장을 쓴다.
헤밍웨이는 가난했다. 캐나다 신문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다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하면서 가끔 단편을 문예지에 기고하면서 생활했다. 배고픔은 일상이었다. 아내 해들리에게는 점심 약속이 있다 둘러대고 공원을 찾기도 했다.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얼마나 근사한 점심이었는지를 알려주며 돈을 조금이나마 아꼈다. 박물관에서 그림도 감상했다. 그는 “뱃속이 텅 비고 배가 고플 때면 그림들이 더 예리하고 선명하며 아름답게 보였다”고 했다. 배고픔의 경험은 그의 작품에도 역설적으로 반영된다. 그는 “어쩌다 보니 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식욕이 왕성한 미식가이고 식탐도 강하며 술도 좋아했다”고 말한다.
가난해도 행복했다.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비아 비치가 운영하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서점에서 때로는 외상으로 책을 빌렸다. 그는 “파리 같은 도시에서 책을 읽을 시간이 주어져 완전히 새로운 책 속의 세계를 발견한다는 건 엄청난 보물을 찾은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헤밍웨이는 실비아 비치의 서점을 알게 된 날부터 러시아 작가들의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 단편 문학의 개척자로 알려진 영국의 캐서린 맨스필드와 러시아 작가 체호프를 비교하는 대목도 나온다. “체호프를 읽고 나서 그녀의 작품을 읽었는데, 간결하고 훌륭한 문체를 지닌 말솜씨 좋은 박식한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노처녀가 억지로 꾸며 낸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차이가 느껴졌다. 맨스필드는 도수 낮은 맥주 같았다. 도수 낮은 맥주를 마시느니 차라리 물을 마시는 게 낫다. 체호프는 투명하다는 걸 제외하고는 물이 아니었다.”
책에는 헤밍웨이가 경마에 빠졌던 이야기, 알프스에서 스키를 즐길 때 얼굴이 햇볕에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염을 길렀던 사정,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여행과 대화, ‘황무지’의 시인을 도왔던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의 만남 등 청년 헤밍웨이의 다양한 일화를 건질 수 있다. 감수를 맡은 문학평론가 김욱동은 “위대한 작가의 사소한 일상까지 모두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의 원제는 ‘움직이는 축제(The Moveable Feast)’다. 헤밍웨이는 1950년 그의 전기를 쓴 A.E.호치너에게 파리 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운이 좋아 젊을 때 파리에서 산 경험이 있다면 평생 어디를 가더라도 파리가 함께 할 거야.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니까.”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