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자국에 손해를 끼치는 국가로 한국을 콕 집어 언급해 파장이 예상된다. 정상외교 공백 상태인 한국에 그동안 거의 시선을 두지 않던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 및 통상무역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나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대미 불공정 관세 사례로 인도와 중국 다음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그는 “인도는 우리 자동차에 100%보다 많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중국의 평균 관세율은 우리가 부과하는 비율의 2배”라고 한 뒤 “한국의 평균 관세율은 4배다. 생각해 보라. 4배나 더 높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2007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사실상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한국의 대미 관세율이 4배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다음 달 2일로 예고한 상호관세 부과에서 한국에 높은 세율을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가 주장한 한국과의 관세율 격차는 미국이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경제적 손실만 입고 있다는 인식에 기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미 상무부의 무역수지 통계에서 10대 대미 흑자국에 올라 있다. 지난해 557억 달러(약 81조원)의 대미 흑자를 기록해 중국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8번째로 많았다.
트럼프가 한국이 10%를 적용하는 부가가치세(VAT) 같은 비관세 장벽을 종합해 관세율 격차를 산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한국은 향후 트럼프 행정부와의 통상무역 협상에서 비관세 장벽까지 허물도록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이날 한국과의 관세율 격차를 말하면서 “군사적으로 많이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언급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지난 1월 20일 취임한 뒤 유럽에 집중적으로 따져 물은 ‘안보 무임승차론’을 한국에 제기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인 2019년 한국 정부에 기존 액수의 6배 수준인 50억 달러(약 7조2000억원)의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당시 조 바이든 행정부와 2026년부터 5년간 적용되는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체결했다. 적용 첫해인 2026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으로 결정됐는데,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요구받은 금액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도 트럼프가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선 집권 1기 때 세 차례나 만났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외교 재개 계획이나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한 대응 등 북한과 관련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2017년 2월 집권 1기 첫 의회 연설 때도 북한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