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며 상호관세 부과 강행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많이 도와주는 데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미 투자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던 근거가 된 반도체법을 폐지하겠다고 밝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가 한국을 직접 겨냥해 관세와 국방, 기업 보조금 문제까지 때리고 나서면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트럼프는 이날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진행한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상호관세를 다음 달 2일부터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나라들은 수십년 동안 우리에게 관세를 부과해 왔다. 이제는 우리가 유럽연합(EU) 중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캐나다에 부과할 차례”라면서 한국을 따로 언급했다. 그는 “한국의 평균 관세는 4배나 높다”는 말을 두 차례 반복하며 “이것이 친구와 적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동맹국이지만 경제 문제에선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시각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의 관세가 4배 높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문제 삼은 부가가치세(VAT)나 정부 보조금 등 비관세 장벽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가 한국의 관세와 군사지원을 엮어 거론한 점에서 향후 방위비분담금 인상에 관세를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반도체법과 남은 것은 모두 없애야 한다”며 “그 돈으로 부채를 줄이거나 다른 어떤 이유든 원하는 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법을 “끔찍하고 끔찍한 것”이라며 “우리는 수천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주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 그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천연가스 개발 등에선 협력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이 향후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개발에 수조 달러 규모의 투자로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백악관에 조선 관련 조직을 신설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향후 조선업 선진국인 한국과 미국이 협력할 공간이 생겼다.
취임 이후 한국에 대해 말을 아껴온 트럼프가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한국을 미국의 이익을 뺏어가는 주요 국가로 명시함에 따라 한국 정부의 외교 역량과 기민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정부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대미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은 사실상 0% 수준”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미 FTA가 2012년 3월 발효된 이후 관세율이 적용되는 수입품목은 약 1만2000개이며, 이들 품목의 전체 평균 실효 관세율은 올해 기준 0.79% 수준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세종=김혜지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