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알바 생활] 50대 여자, 알바를 시작하다

입력 2025-03-08 00:30

집안이 적막했다. 아이들은 다 커서 엄마의 손길이 귀찮고 20년 넘은 집안일은 별로 할 것도 없이 지루하다. 휴대폰을 열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놀러 가자고 하면 다들 이미 약속이 있거나 사정이 있는데, 나는 시간이 남아돈다. 하긴 돈 써서 매일 어디 놀러 갈 수도 없는 거 아닌가.

체력은 넘쳐 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으니 우울하기만 하다. 15년 전 나도 큰 회사에 다니며 남들이 알아주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아이 둘 낳고 나니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는 먼 시골에 계셨다. 갓난아기 둘이라 입주 육아 도우미를 들였다. 하지만 내가 버는 만큼 월급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나마 한 달 넘게 붙어 있는 도우미면 다행이었다. 밤새 아기 돌보는 게 힘들다, 아기가 너무 운다, 엄마가 이유식을 제대로 준비 안 한다 등의 이유로 쉽게 그만뒀다. 그러면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다시 도우미를 급하게 찾아야 했다.

새로 도우미가 오면 출근하는 현관에서 아이는 나를 붙잡고 놓지 않고는 엉엉 울었다. 겨우 떼놓고 출근해 회사에 있으면 도우미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아프다고. 낯선 사람 품을 거부하는 아이는 쉽게 아파했다. 회사일은 치열하게 돌아가며 경쟁의 칼날 위에서 걷고 있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도우미의 전화를 받고 회의 도중 뛰쳐나가면서 나는 함께 일할 수 없는 여자가 됐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15년 동안 아이 둘을 키웠다.

너무 오랫동안 집안일만 하며 돈도 못 벌었다. 나는 내 손으로 돈을 벌면 몸속에 피가 확 도는 것 같은 여자였다. 노후 생각도 났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휴대폰에 알바 앱을 다운받아 열어 봤다. 제일 먼저 유명 물류센터 광고가 번쩍거렸다. 거기는 힘들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한참 앱을 내리니 텔레마케팅 알바가 보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월급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무직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이다. 대부분 하루 몇 시간이지만 매일 하는 건 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계속 앱을 내렸지만 적당한 게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는데 지역 기반 물물교환 앱에도 알바 자리가 뜬다는 게 생각이 났다. 앱을 열어 알바를 치니 근처 공장 알바가 눈에 띄었다. 유명 아이돌 앨범 포장을 한다고 크게 떠 있었다. 일당도 적지 않아 눈이 커졌다.

그런데 이건 육체노동이다. 나는 사무직을 오래 해 육체노동을 비하하는 마음이 있었다. 망설이다가 알아보겠다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건 인력 알선 업체였다. 정 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는 일도 쉽고 자리는 많다고 꼭 일하라고 권유했다. 그때 텔레마케팅 알바 자리가 다시 생각났다. 그 자리는 그래도 사무직 일인데. 하지만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이다. 뱃살만 늘어날 것이다. 공장 알바는 몸이 힘들겠지만 운동이 된다. 그게 좋아 나는 용기를 내 육체노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