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문체부 관료주의와 ‘예술의 적’

입력 2025-03-06 00:38

“민주주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관료주의다.” 김대중정부에서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고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가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워낙 임팩트가 강한 데다 수많은 사람이 공감한 덕분에 지금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공공성을 지킨다는 것은 착시이며, 관료집단은 이익집단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관료들의 기회주의적 속성이나 부처 이기주의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질타했다. 그는 관료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정부가 잘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 부분은 민간에 넘기는 ‘공유정부’ 개념을 제안했다. 공공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안보·외교·치안 등은 정부가 맡되 교육·관광·문화 등은 민간에 이양하자고 했다. 하지만 관료제가 강력한 한국에서 ‘공유정부’가 쉽지 않았던 만큼 그는 중앙인사위원장 시절 민간 전문가가 공직에 올 수 있도록 개방형 직위 제도를 도입했다.

김 교수의 지적은 현재 한국 문화예술계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각종 문화 정책과 예술지원 제도를 틀어쥔 문체부가 문화예술계를 다스린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시민사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공공 자원을 배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수록 문체부의 관료주의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문체부가 6일 발표하겠다는 ‘문화한국 2035’는 대표적인 사례다. ‘문화비전 2035’는 지역소멸, 저출생·고령화, 기후위기, 인공지능 대전환 등 한국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10년간의 문화 정책을 계획한 것이다. 정책의 큰 방향성은 맞지만 세부 계획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의견 수렴이나 정밀한 진단도 없이 밀어붙이면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국립발레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5개 국립예술단체 통합과 지방 이전에 대한 현장의 저항이 크다. 타당성이나 우려에 대한 설득 없이 문체부가 법인과 사무처 통합 작업에 먼저 나섰기 때문이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문체부가 강행하는 것은 국립예술단체장 임면권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사회 구성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다. 게다가 이들 국립예술단체 내 행정 최고 책임자로 파견이든 공모든 문체부 출신이 간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막을 방법이 없다.

문화예술계에서는 통합 이후 국립예술단체에 대한 문체부의 장악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심지어 문체부는 혼란한 탄핵 시국의 틈을 타 지난해 말 대통령령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 기관 직제’ 개정으로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연구직 공무원을 연구직 또는 일반직으로 바꿨다. 민간 전문가만 지원할 수 있던 경력개방형이 공무원도 지원할 수 있는 개방형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최근 ‘국악의 종가’ 국립국악원장 공모를 통해 문체부 실장 출신이 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민간에 개방한 국립예술기관장 자리는 문체부 퇴직 관료들 몫이 될 가능성이 커 우려스럽다.

문재인정부 시절 임명된 최정숙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는 ‘후임 임명까지 임기가 연장된 것으로 본다’는 정관에 따라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다가 최근 문체부로부터 ‘임기 종료 통보’ 공문과 함께 사퇴 압박을 받은 것이 알려졌다. 문체부와 국립예술단체 사이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이런 사퇴 압박이 처음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 대표는 황희 전 문체부 장관 시절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꼽혀 현장의 비판을 받았는데, 당시 문체부가 철저하게 엄호했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의 민낯을 보게 된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