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첨단 분야 인재 키우려면 대학 자율화부터

입력 2025-03-06 00:36

초·중등 학업성취 최상위인데
성인 역량은 하위권으로 추락

대학이 우수한 학생 못 키우고
시장 수요 대응 못한다는 반증

정부 지원금에 재정 매달리고
온갖 규제에 갇힌 현실에서
경쟁력 있는 대학 나올 수 없다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국제 성인 역량 조사(PIAAC)’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생산가능 인구의 역량은 OECD 국가 중 하위권이며, 근로자의 전공과 업무 간 불일치 수준은 최상위권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여년간 70%가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2012년 발표된 1주기 조사에서 중위권에 속했던 순위는 이번 2주기 조사에서 하위권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초등·중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조사하는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 평가(TIMSS)’와 노동가능 인구로 편입되기 직전 중3에 재학 중인 만 15세를 대상으로 학업성취도를 조사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는 지난 십수년간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대학이 우수한 자질을 가진 학생들을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가진 근로자로 키워내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지도 않고 시장에서 수요도 없는 전공을 선택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고등교육 기제가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교육부는 관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특정 전공의 설립이나 증원을 대학에 권고하고 인센티브를 제시한다. 교육부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 대학의 재정이 등록금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과 정원에 대한 교육부의 권고 사항이 발표될 때마다 대학은 골머리를 앓는다.

동결된 대학 총정원 내에서 전공을 설립하려면 기존 학과의 정원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원을 지켜내기 위한 기존 학과들과 대학 간 갈등이 빚어지고, 대학은 입시지원율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학과에서 일정 비율로 정원을 줄여 특정 분야의 전공을 설립하거나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린다. 하지만 기존 학과들의 저항 때문에 신설되는 전공은 충분한 정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입학 정원을 규제하는 틀 속에서 대학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충분히 공급하기는 쉽지 않다. 교육에 필요한 물적·인적 자원과 역량을 고려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입학 정원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입학 정원만 확보하면 학생 모집은 문제 없던 시절에 교육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학령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입학정원 규제는 오히려 학생 모집이 어려운 대학과 학과의 충원을 도와 시장에서 인력 수급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뿐이다.

물론 폐교 시에 학교법인의 잔여 재산이 국고에 귀속되는 규제를 풀어 학생 모집이 어려운 한계 대학이 출구전략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젊은이들이 미래에 활용하지도 못할 교육 과정을 이수하느라 시간과 돈을 허비하게 만드는 대학 입학정원 규제는 이제 그만 접어야 한다.

또한 지역 균형 발전에 발목이 잡혀 국가 발전을 위한 첨단 분야의 인재 양성이 어려운 상황도 바로잡아야 한다. 첨단 분야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다수의 대학이 수도권에 분포한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총량으로 규제하는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2025년 대학입시에서 의대 증원와 함께 첨단 기술 학과에 한해 수도권 대학의 순증원이 허용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향후 첨단 기술 학과만이라도 대학이 자유롭게 순증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줬으면 한다.

하지만 등록금 자율화 없이 정원 규제 완화만으로 첨단 분야의 인재 양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값 등록금이 사회의 화두였던 2009년부터 사실상 동결된 등록금으로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면서 첨단 분야의 우수 인재를 교원으로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기술의 출현과 급속한 발전으로 첨단 분야의 경쟁력이 화두가 될 때마다 정부는 관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입학 정원, 등록금 등 학사 전반에 걸쳐 자율권이 대학에 주어지지 않는 한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네거티브 규제를 통해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대학이 능동적으로 시장의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을 운영함에 있어 무엇도 인재 양성이란 대학의 목적에 우선할 순 없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