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를 뚫고 내려갈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으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으로 단숨에 1460원대로 뛰어올랐다. 원·달러 환율이 유독 세계 경제 불확실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 엔화는 금리 인상 전망 등으로 강세를 보이며 원·엔 환율이 21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종가 기준 1461.8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1.6원 내렸다. 미국의 관세 위협이 환율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미국 경기 침체 우려에 소폭 떨어졌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공급관리협회(ISM)는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0.3으로 전월 대비 0.6포인트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달러 약세 요인에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긴 했으나 달러화 가치 하락에 비하면 그 폭이 미미하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106.526으로 전날 대비 0.67% 하락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최근 원화가 다른 아시아 통화 대비 뚜렷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미국 관세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지목된 중국 위안화 대비 취약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엔화 대비 원화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이날 원·엔 재정환율은 오후 3시 30분 100엔당 978.61원으로 직전 거래일보다 3.17원 올랐다. 2023년 5월 16일 984.37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화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가치 인상 압박과 일본은행(BOJ)의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승세다.
원화 약세는 관세 전쟁 등 불확실성에 과도하게 반응한 결과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부터 줄곧 1400원을 넘는 고(高)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하자 지난달 28일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463.4원으로 전일보다 20.4원(1.5%) 급등했다. 같은 날 엔·달러 환율은 150.63으로 전일 대비 0.82(0.5%)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아 미국 관세 정책이 더욱 위협적이고 한국 경제 전망이 어두워 원화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구체적인 정책은 달라지더라도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자체는 변하지 않는 상수인데, 한국은 대표적인 세계화 수혜국”이라며 “게다가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이 중국에 점유율을 뺏기고 있어 긍정적으로 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폐쇄적인 외환시장 구조 탓에 미국발 관세 위협으로 인한 위안화의 가치 절상이 원화로 전이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의 미국 투자 열기에 따라 높아진 달러 수요도 원화 약세를 부채질한다. 현재 시장에서 관측하는 원·달러 환율 상단은 1470원까지 열려 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