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최근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자 선제 대응으로 법정관리를 택했다. 기업회생신청이라는 홈플러스의 초강수에 업계 안팎에서는 소유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유동성 확보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4일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홈플러스가 이날 새벽 12시3분쯤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지 11시간 만이다. 홈플러스는 “신용등급이 낮아져 단기자금 측면에서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단기자금 상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사전예방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금결제 등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오는 5월부터 자금 부족 사태가 예상된다.
홈플러스는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단기 유동성 확보에 차질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납품업체에 한 두 달 뒤 대금을 지급해주기로 하면서 정산 지연 이자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적자도 쌓여왔다. 연간 매출이 7조원에 육박하지만 영업이익은 2021년부터 1000억~2000억원대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2021년 1335억, 2022년 2602억, 2023년 1994억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가결산 기준으로 영업손실은 1571억원 발생했다.
홈플러스의 경우 경쟁사에 비해 재무 부담이 크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MBK파트너스가 2015년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인수하면서 5조원을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받았다. 당시 국내 인수합병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사례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금융 비용을 홈플러스가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입금 상환을 위해 전국 매장을 무차별적으로 매각하면서 사업 규모가 축소됐고 신용등급 하락과 장기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가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노력 없이 금융채무 탕감과 조정을 위해 법원에 손을 내민 것에 대해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홈플러스에 대출 1조2000억원을 집행한 메리츠금융그룹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자금 회수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메리츠화재·증권·캐피탈은 홈플러스에 선순위 대출을 해줬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의 홈플러스 신용등급은 지난달 말 ‘A3’에서 ‘A3-’로 하향조정됐다. 이익창출력 약화, 현금창출력 대비 과중한 재무부담, 중장기 사업 경쟁력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 등이 이유로 꼽힌다.
업계는 당장 티몬·위메프 때처럼 대규모 미지급 사태가 발생하진 않겠지만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점포 매각·폐점으로 자산을 유동화하는 데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며 “홈플러스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는 거래처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 문제다. 다른 유통채널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가현 구정하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