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선교로 돌아가자!

입력 2025-03-06 03:09
지난해 11월 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선교협회 창립식에서 한국 선교 리더들과 현지 지도자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선교협회 창립은 한국 선교의 ‘타겟 2030운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황성주 회장 제공

영향력 있는 선교 전문가 필 마샬은 모든 선교사 가운데 ‘3분의 1은 있어야 할 존재이고 3분의 1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며, 3분의 1은 있지 말아야 할 선교사’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70년대 초 동아프리카 교회 지도자인 존 가투는 서구 선교사들에게 최소 5년간의 선교 유예를 요청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뜻이었다. 비슷한 시기 필리핀의 유니언신학교 학장은 ‘선교에서 강자·약자의 의존적 구조에서 벗어나는 길은 빨리 선교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초강경 발언을 던졌다.

IMF 혹은 팬데믹 시기에 절반의 선교사가 정리되는 현상이나 선교지의 정치적 상황 변화로 많은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나는 것도 ‘하나님에 의한 선교 모라토리엄 또는 강제적 선교사 재배치’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모든 현상은 힘과 선교는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선교는 국력의 힘, 돈의 힘, 지식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교 패러다임 바꿔야

일본의 유명한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의 창업자는 난(蘭)의 철학으로 유명하다. ‘난은 팽개쳐 두면 죽어 버린다. 그런데 손을 많이 줘도 오히려 죽는다’는 뜻이다. 사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 하다. 의학적 관점에서 혁신이란 환부를 제거하되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과 적절한 치유 및 성장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성경적 선교의 원리이고 바른 목양의 원리이다.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상황이 급변하는 시기에서는 선교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가 절실하다.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 엄청나게 기여한 것이 많지만 동시에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선교사에 대한 불신을 넘어 선교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확한 상황 진단과 이에 딱 들어맞는 지혜로운 처방이 필수적이다.

미국 최대 선교 기관인 남침례회선교부(IMB)의 총무는 한국 선교사의 강점으로 신속성(speed), 끝장을 보는 강인함(perseverance), 동시다기능(multiplay), 감을 잡고 치고 나가는 것(sense and reaction)을 들었다. 이런 강점을 배경으로 한국형 선교(K-Mission)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놀라운 공헌을 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연약함과 한계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힘으로 군림하는 선교, 물량주의 선교, 한탕주의 감상적 선교, 선교사들간의 불협화음, 선교사 고령화, 각자도생의 고립 선교, 잘못된 모델 전파의 단기선교,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프로젝트성 선교, 보여주기식 영웅주의 선교, 체계 없는 도박성 선교, 선교의 중복투자, 속 빈 강정 같은 선교훈련, 선교본부와의 소통 어려움, 파송 시 인맥에 의한 지원 결정, 재정 사용의 불투명성, 선교 보고의 중압감, 방치된 선교사 건강관리와 자녀교육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선교의 상황화냐 토착화냐 또는 문명화냐 복음화냐 하는 등의 논란도 지속해 왔다. 물론 이중에서는 이미 해결된 경우도 있고 진지하게 해답을 찾으면서 개선하고 있는 영역들도 있기는 하다.

우리에겐 선교의 교과서가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빌리온소울하비스트(BSH) 글로벌 퍼실리테이터 모임에서 대륙별 리더들이 함께하고 있다. 황성주 회장 제공

사역을 하면서 항상 겪는 일이지만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문제가 생기면 본질로 돌아가는 것, 즉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면 된다. 선교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는 선교 사역의 보석 같은 원리들이 숨어 있다. 그 핵심 원리는 성령의 주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 부를 정도로 철저한 성령 중심의 사역으로 일관하고 있다.

선교 사역의 전제 조건은 성령의 능력이었다.(행 1:8) 사역자의 기준은 항상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이고(행 6:3) 사역의 원리도 모든 상황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었다.(행 8:29) 재정 사용의 투명성은 생명처럼 소중했다.(행 5:4) 의사결정에서 성령에 민감한 리더들로 구성된 공동 리더십의 원리가 시행되었고(행 8:14, 행 11:1, 행 15:22) 투표가 아닌 전원합의제를 채택했다.(행 15:26)

어쩌다 골을 넣은 사람을 축구선수로 선발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객관적 검증 과정이 중요했고 이미 삶에서 사역의 열매가 입증된 자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선발했다.(행 13:2) 사역 원리나 선교 정책의 변경도 철저히 성령에 의존했고(행 16:6) 문제가 생겨도 기도와 찬송으로 일관했다.(행 16:25)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선교 교과서인 사도행전에서 인간의 전통과 경험에 의존한 선교 사역은 발붙일 곳이 없다.

필자는 20년 전 미국 남가주 은혜한인교회 김광신 목사를 통해 선교의 원리를 깊이 터득할 수 있었다. 그는 선교사의 선발 기준은 오직 하나, 곧 ‘성령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 교회는 사역의 열매가 입증된 성령충만한 장로들을 대거 선교지로 파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교의 원리도 오직 성령으로 시작하는데 교회 개척도 먼저 성령의 역사와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면 재정 지원을 통해 기름을 붓는 형태로 진행한다고 했다. 즉 성령의 소프트웨어가 먼저 작동하면 여기에 맞는 하드웨어(건물 등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것인데 김 목사는 독특한 억양으로 “먼저 성령으로 밀고 그다음에 돈으로 민다”고 표현하면서, 이 순서를 바꾸면 선교는 끝장이라고 했다. 결국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20세기 말 소련이 붕괴하던 복음 전파의 황금기에 은혜한인교회를 통해 러시아와 벨라루스, 중앙아시아 각국에 수천 개의 교회를 설립해 사도행전을 재현하면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했던 일화는 선교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보유했던 몽골제국을 연구한 믹 예이츠는 그 중심에 칭기즈칸의 ‘4E 리더십’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즉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많은 영토를 정복하고 통치하는 비결이 비전 제시(Envision), 능력 부여(Enable), 에너지 공급(Energize), 권한 위임(Empower)이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속한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선포하면서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능력 부여, 에너지 공급, 권한 위임의 세 가지 기능을 예수의 영인 성령께 맡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성령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만이 지상명령을 이루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 혼란의 정점에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이한 한국교회가 사는 길에 우리 민족에게 주신 세계 선교의 사명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는 핵심 비결은 성령의 사역, 성령의 선교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성령 없는 선교는 십자가 없는 복음처럼 무의미한 것이다.

성령은 모든 사역의 주체

요즘 같은 대격변의 시대에는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가장 안정된 조직이 가장 불완전한 조직이고, 가장 불안정한 조직이 가장 완전한 조직이다’라는 말인데 예측 불가의 상황에서 허를 찌르는 묘수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시대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슬림하고 유연한 조직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사실상 선교 불신을 초래한 한국교회는 더 절박한 숙제들을 시한폭탄처럼 품고 있다. 한국교회가 살아남으려면 성령의 주도권을 인정하면서 모든 것을 리셋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AI) 시대에 진입하면서 모두가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희소식이 있다. AI와 디지털을 합한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권능을 가진 성령의 임재가 함께하고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대위임명령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의 부여를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한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바로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점점 가까워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국교회와 선교계가 사는 길은 사역의 주체이신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황성주 KWMA 회장·사랑의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