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면 충분… ‘미드폼’ 예능·드라마 대세되나

입력 2025-03-04 18:36
KBS에서 수·목요일에 방송되는 시트콤 ‘킥킥킥킥’(위쪽)과 넷플릭스에서 매주 일요일 공개되는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는 분량이 30분 정도다. ‘미드폼’ 콘텐츠는 코믹 장르에 최적화한 길이여서 지상파, OTT를 가리지 않고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KBS 넷플릭스 제공

콘텐츠의 길이가 플랫폼 구분 없이 다양해지고 있다. TV에서도 30분짜리 시트콤이 방영되고, 유튜브에선 60분을 넘는 영상이 인기를 끄는 등 콘텐츠의 길이로 플랫폼을 구분하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는 모습이다.

최근 눈에 띄는 변화를 시도한 건 KBS다. 주시청층인 중장년 여성을 겨냥한 긴 콘텐츠 대신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젊은 층의 니즈를 충족할 만한 30분짜리 시트콤을 선보인 것이다.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시트콤 ‘킥킥킥킥’은 한 회차를 30분짜리 콘텐츠 2개로 구성해 방송하고 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에서는 ‘1-1’, ‘1-2’로 한 회차를 분리해 업로드한다.

KBS가 이런 변화를 시도한 건 변화하는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김영조 KBS 드라마센터장은 4일 “OTT와 경쟁하는 시대에 KBS도 변신이 필요하다. 세상이 짧아지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니, 창작자들도 그에 맞추는 것”이라며 “우리보다 먼저 미디어 발전을 겪은 미국이나 일본은 주 1회 편성되는 드라마도 있고, 20분짜리 시트콤도 있다. 우리도 이런 진화의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KBS는 ‘킥킥킥킥’의 후속작으로 시트콤 ‘빌런의 나라’도 방영한다. 이 역시 30분짜리 콘텐츠 2개를 연이어 방송한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30분짜리 12편으로 구성된 멜로드라마 ‘러브 인 서울’(가제)을 3주간 방영하는 것도 구상 중이다. 김 센터장은 “아직 계획 수준”이라면서도 “‘빌런의 나라’가 잘 된다면 현재 기획 중인 새 시트콤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형식의 변화를 시도하며 외연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OTT와 유튜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는 매일 한 편씩, 30분 분량의 예능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일일예능을 시작했다. 매주 월·수·목·토·일요일에 ‘추라이 추라이’, ‘미친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 등 5편의 예능을 한 회차씩 공개하는 방식이다. 대표 예능인 ‘피지컬 100’, ‘솔로지옥’, ‘흑백요리사’ 등이 회차당 1시간 이상으로 구성됐던 것과 다른 흐름이다.

이는 올해의 콘텐츠 키워드를 ‘다양성 확대’로 설정한 데 따른 변화다. 깊이 몰입해 10시간 이상 정주행하는 콘텐츠 대신, 밥 한 끼를 먹으며 가볍게 보고 정리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도 제공하며 다변화된 시청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미드폼’(한 회차가 20~30분으로 구성) 형식이 코믹 장르에 최적화됐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판단이기도 하다.

유튜브는 짧은 콘텐츠, OTT는 긴 콘텐츠라는 기존의 공식을 깬 시도들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는 10분 안팎의 영상들이 주를 이루지만, 유재석과 침착맨(웹툰 작가 이말년) 등이 올리는 1시간을 훌쩍 넘는 롱폼 콘텐츠들도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와 반대로 티빙과 왓챠는 숏폼 콘텐츠를 위한 서비스를 도입했다.

콘텐츠 형식을 통한 차별화 전략이 의미 없어지면서, 결국은 플랫폼의 주된 시청층 및 장르 특성을 고려한 콘텐츠 제작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콘텐츠의 길이보다는 콘텐츠의 기본적 함량이 충족됐느냐, 또 장르와 소재, 포맷에 맞는 채널에 편성됐느냐가 중요하다”며 “KBS에서 시청률이 낮아 폐지됐던 ‘홍김동전’이 넷플릭스로 가며 성공한 게 일례”라고 짚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