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길이가 플랫폼 구분 없이 다양해지고 있다. TV에서도 30분짜리 시트콤이 방영되고, 유튜브에선 60분을 넘는 영상이 인기를 끄는 등 콘텐츠의 길이로 플랫폼을 구분하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는 모습이다.
최근 눈에 띄는 변화를 시도한 건 KBS다. 주시청층인 중장년 여성을 겨냥한 긴 콘텐츠 대신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젊은 층의 니즈를 충족할 만한 30분짜리 시트콤을 선보인 것이다.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시트콤 ‘킥킥킥킥’은 한 회차를 30분짜리 콘텐츠 2개로 구성해 방송하고 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에서는 ‘1-1’, ‘1-2’로 한 회차를 분리해 업로드한다.
KBS가 이런 변화를 시도한 건 변화하는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김영조 KBS 드라마센터장은 4일 “OTT와 경쟁하는 시대에 KBS도 변신이 필요하다. 세상이 짧아지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니, 창작자들도 그에 맞추는 것”이라며 “우리보다 먼저 미디어 발전을 겪은 미국이나 일본은 주 1회 편성되는 드라마도 있고, 20분짜리 시트콤도 있다. 우리도 이런 진화의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KBS는 ‘킥킥킥킥’의 후속작으로 시트콤 ‘빌런의 나라’도 방영한다. 이 역시 30분짜리 콘텐츠 2개를 연이어 방송한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30분짜리 12편으로 구성된 멜로드라마 ‘러브 인 서울’(가제)을 3주간 방영하는 것도 구상 중이다. 김 센터장은 “아직 계획 수준”이라면서도 “‘빌런의 나라’가 잘 된다면 현재 기획 중인 새 시트콤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형식의 변화를 시도하며 외연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OTT와 유튜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는 매일 한 편씩, 30분 분량의 예능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일일예능을 시작했다. 매주 월·수·목·토·일요일에 ‘추라이 추라이’, ‘미친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 등 5편의 예능을 한 회차씩 공개하는 방식이다. 대표 예능인 ‘피지컬 100’, ‘솔로지옥’, ‘흑백요리사’ 등이 회차당 1시간 이상으로 구성됐던 것과 다른 흐름이다.
이는 올해의 콘텐츠 키워드를 ‘다양성 확대’로 설정한 데 따른 변화다. 깊이 몰입해 10시간 이상 정주행하는 콘텐츠 대신, 밥 한 끼를 먹으며 가볍게 보고 정리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도 제공하며 다변화된 시청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미드폼’(한 회차가 20~30분으로 구성) 형식이 코믹 장르에 최적화됐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판단이기도 하다.
유튜브는 짧은 콘텐츠, OTT는 긴 콘텐츠라는 기존의 공식을 깬 시도들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는 10분 안팎의 영상들이 주를 이루지만, 유재석과 침착맨(웹툰 작가 이말년) 등이 올리는 1시간을 훌쩍 넘는 롱폼 콘텐츠들도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와 반대로 티빙과 왓챠는 숏폼 콘텐츠를 위한 서비스를 도입했다.
콘텐츠 형식을 통한 차별화 전략이 의미 없어지면서, 결국은 플랫폼의 주된 시청층 및 장르 특성을 고려한 콘텐츠 제작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콘텐츠의 길이보다는 콘텐츠의 기본적 함량이 충족됐느냐, 또 장르와 소재, 포맷에 맞는 채널에 편성됐느냐가 중요하다”며 “KBS에서 시청률이 낮아 폐지됐던 ‘홍김동전’이 넷플릭스로 가며 성공한 게 일례”라고 짚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