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친 듯… 포개져 서로 기댄 ‘도넛 책가도’

입력 2025-03-05 02:16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는 김재용 작가의 회화 ‘달콤한 지식’(2025). 학고재갤러리 제공

먹음직스런 도넛 모양 조각으로 아트페어에서 인기를 끌며 ‘도넛 작가’라는 별명을 얻은 김재용(52) 작가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인전 ‘런 도넛 런’을 하고 있다. 학고재에서 하는 세 번째 개인전이다.

지난 26일 전시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작가는 “힘든 미국 유학 생활 시절, 도넛은 지금 당장 먹어야 하는 마시멜로가 아니라 꿈처럼 걸어둬야 하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재용은 도넛 모양 도자를 제작한 뒤 그 위에 다채로운 스프링클을 얹는 작업을 16년 이상 지속해왔다. 그가 탄생 시킨 도넛 도자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도자기를 제작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청화백자에서 보듯 도자기 조형에 용무늬 등 그림을 그린 후 뜨거운 가마에 굽는 전통 방식과는 다르다.

도넛 도자는 도자기를 먼저 굽는다. 그 다음 그림을 그리기 쉽게끔 표면을 갈아서 도료 혼합물인 젯소를 바른 후 그 위에 색을 칠한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은 그런 독자적인 방식을 통해서 탄생했다.

조각 ‘도넛 페인팅 시리즈’(2022-2025). 학고재갤러리 제공

하트, 곰, 고양이 등 다양한 모양의 도넛 형태 역시 물레질로 조형하지 않았기에 가능하다. 작가는 형태를 만든 뒤 조각하듯 깎아내거나 소조하듯 붙임으로써 형태의 다양성을 꾀한다. 도넛 느낌에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해 도넛 작품의 몸체로 도자기 대신 기포가 덜 생겨 매끈한 표면감을 주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를 사용하기도 한다.

독특하면서 차별화된 화려한 색감은 색약이라는 제약의 산물이기도 하다. 한국의 미대에서는 색약이 장애로 인식돼 작가는 입학하지 못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트퍼드 아트 스쿨 조각과를 졸업하고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도자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작가는 현지에서 “어쩌면 너는 이런 색을 쓸 수 있니”라는 칭찬을 받으며 다름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했다. 현재는 서울과기대 도예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도넛 조각과 함께 도넛 회화를 새롭게 선보였다. 도넛의 옆면을 의인화한 게 눈길을 끈다. 도넛의 옆면이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회화 ‘런 도넛 런’도 있고, 책장 속의 책처럼 도넛이 꽂혀있기도 하다.

삶에 지친 듯 서로 기대 있는 모습에서는 작가의 인생 역정이 연상되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성공한 삶을 자축이라도 하듯 도넛 모양을 승리의 트로피처럼 은색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해 세운 설치 작품도 내놨다. 4월 5일까지.

글·사진=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