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맞이하는 기독인의 자세… 묵상·탄소 금식·돌봄·나눔… 그리스도 고난의 여정 동참을

입력 2025-03-05 03:00
게티이미지뱅크

극단적 정치 상황과 저출산 및 고독사, 9년 만에 가장 높아진 자살률 등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은 차갑기만 하다. 희망의 언어보다 절망의 신조어가 더 빨리 쌓여가는 시대에 맞이하는 사순절이다. 예수 그리스도 고난의 여정을 떠올리는 사순절을 맞는 한국교회는 돌봄 묵상 감사 나눔 등을 강조하며 신앙의 기본을 다시 돌아볼 것을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받는 우리는 돌보는 이로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는다. 사순절 기간 우리 모두에게 돌봄받고 돌볼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길 바란다.”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가 2025 사순절 묵상집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대한기독교서회)를 펴내면서 강조한 말이다. 책은 ‘돌봄’을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돕는 묵상집이다. 박 목사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돌봄이라는 교회 본연의 역할은 교회가 잘할 수 있는 사역이면서 사회가 요청하는 사명”이라며 “이번 사순절엔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깊이 묵상하자”고 요청했다.

5일 시작되는 사순절은 부활절(4월 20일) 전날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간 이어진다. 말씀 묵상과 필사, 릴레이 금식, 탄소 금식 등의 방식으로 사순절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교회에선 이웃을 향한 돌봄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청주 상당교회(안광복 목사)는 사순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시간으로 보낸다. 교인들은 다음 달 6일부터 매주 주일마다 NGO 후원, 헌혈, 초록가게 물품 기부 등을 각각 실천한다. 절제와 묵상을 겸한 프로젝트도 40일간 진행된다. 성도들은 매일 한 시간씩 에너지와 미디어 사용을 절제하며, 이 시간을 성경 묵상과 기도로 채운다.

사순절을 감사와 나눔의 계기로 삼는 움직임도 있다. 광주 열린벧엘교회(손희선 목사)는 ‘40일 감사일기 캠페인’을 통해 성도들이 매일 감사한 세 가지를 기록하고 공동체와 나눈다. 다음세대 회복을 위한 ‘40일 밤에 뜨는 별’ 기도회도 이어진다. 사순절 기간에 열리는 연합 기도회로 다양한 목회자들이 돌아가며 말씀을 전한다. 오는 11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매일 저녁 서울 신촌공유교회에서 진행된다. 한국컴패션(대표 서정인 목사)은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사순절 필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교단별로 생태 돌봄을 독려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대한성공회(의장주교 박동신 신부)는 ‘녹색 사순절’ 캠페인을 전개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교회와 성도들에게 대중교통 이용,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에너지 절약 등 탄소배출 저감 활동을 제안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감독회장 김정석 목사)도 “탄소 금식은 우리가 지구에 끼친 고통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이끈다”면서 “탄소 금식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 회복을 위해 거룩한 습관을 살아가는 영적인 실천”이라고 밝혔다. 기감은 기독교환경운동연대(사무총장 김영현 목사)의 ‘2025년 사순절 녹색 순례 안내서’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센터장 유미호)의 ‘2025년 사순절 탄소 금식 자료’를 교회들에 공유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박상규 목사)도 각 교회에 사순절 7주 기간 동안 탄소 금식을 실천하자고 권면했다.

한국교회 원로들은 사순절 경건 생활이 자기 만족이나 수련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상복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는 “예수께선 고난을 받아들이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구했다”며 “사순절 기간 우리의 절제가 무엇을 끊어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금식을 통해 얻은 시간과 자원을 이웃과 나누고, 내려놓은 욕망이 사랑으로 이어질 때 본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성빈 전 장로회신학대 총장은 사순절 경건 훈련이 부활의 신앙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사순절 경건 훈련보다 중요한 건 부활절 이후의 삶”이라며 “한국교회는 사순절을 강조하지만 정작 부활절이 되면 달걀 하나 나누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며 “모든 절제와 금식은 부활의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성 손동준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