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이야기가 목숨이다

입력 2025-03-05 00:31

옛 페르시아의 샤리아르왕은 궁전을 비운 사이 왕비가 불륜을 저지른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는다. 분노한 왕은 이들을 색출해 모조리 처단하고 극심한 여성 불신에 빠져 복수를 결심한다. 왕은 포고령을 내려 나라의 처녀를 불러들여서 아내로 만들고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죽이는 일을 천일 동안이나 반복한다.

온 나라는 공포에 사로잡히고 여인들은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를 지켜보던 재상의 큰딸 셰에라자드가 스스로 자원하여 목숨을 걸고 왕의 아내가 된다. 그러고는 왕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이 들어 보니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녀는 이야기의 절정이 되는 부분에서 내일 얘기하겠다며 이야기를 끊고 왕은 다음 날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녀를 살려뒀다. 이런 식으로 1001일 밤 동안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왕은 서서히 치유되고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나라를 평화롭게 이끌어 갔다.

‘천일야화(千一夜話)’, 즉 ‘아라비안나이트’의 내용이다. ‘알라딘과 마술램프’ ‘신드바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이 천일야화의 대표작이다. 셰에라자드는 자신의 이야기가 끊어지면 목숨도 잃고 나라를 비극에서 구하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있었다. 왕이 흥미를 잃거나 더 이상 듣기를 원하지 않아도 목숨을 잃는 상황이었다. 이야기가 곧 목숨이었다.

이야기는 언제나 중요하다. 옷 화장품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 심지어는 만년필까지 거의 모든 제품에는 일정한 양만 만드는 한정판(a limited edition)에서도 첫째 요소가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만년필의 경우를 보자. 미국 독립기념관을 구성하고 있던 나무로 제작된 것이 있다. 1968년에는 미국인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돈 우주비행사인 존 글렌이 탔던 로켓의 일부로 볼펜과 만년필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특별한 의미와 스토리가 있는 재질로 만들어지는 한정판 제작 공식은 계속 이어진다. 명품의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스토리다.

미국 대통령들은 이른바 ‘펜 사이닝(pen signing)’이라는 흥미로운 사인 행사를 한다. 새로운 법안 등에 사인할 때 여러 개의 만년필(펜)로 사인한 후 사인에 사용한 펜을 조력자 후원자 내지는 고마운 관계자에게 선물하고 보관하는 것이다. 이때 사인한 만년필은 그저 고급 만년필이 아니라 이야기가 스며 있는 펜이다. 스토리가 있는 것은 비싼 것보다 향기롭다.

우리 삶에서는 어떠할까. 삶 속에 예수님을 영접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한 이야기가 있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이야기가 없는 사람’의 삶은 천국을 향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뿐이다.

스펙보다 스토리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예수님을 사랑한 흔적(스티그마)이 가득하다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 스토리가 있는 인생이 최고의 인생이다. 이야기가 곧 목숨이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b)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약력>△성균관대 졸업 △침례신학대학원(MDiv, ThM) △미국 남침례신학교 구약학 박사 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