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차가운 검은 돌을 만지러 금강에 가다

입력 2025-03-05 00:35

신기루처럼 반짝이는 '강남'
빠른 성장의 그늘 속 숨진 이들
우리는 충분히 애도 했을까

올해 초 차를 몰고 충북 옥천 금강휴게소를 향했다. 바람은 매서웠고 채 녹지 않은 눈이 산과 들 곳곳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미끄러운 길을 조심히 달리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정오를 향했다. 서재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길눈까지 어두운 터라 여행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뜬금없이 금강휴게소를 찾아가겠다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자신이 얄궂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여행은 엄연한 출장길이었다. 나는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다루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한다. 계절마다 지역을 정해 문헌 조사부터 취재, 원고청탁과 교정, 도판 편집까지 한다. ‘여행을 즐기지 않는 이가 이런 일을 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가끔 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원고를 보고 게걸스럽게 자료를 모은다.

사소한 문제는 취재지가 옥천이 아닌 서울 강남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강남을 이해하려면 금강휴게소를 반드시 가봐야 한다는 것이, 어질어질해질 때까지 자료를 읽고 원고를 다듬던 나의 결론이었다. 물론 옥천과 서울, 특히 강남은 사뭇 다르다. 지난 몇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다 어느 도시에든 ‘강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산의 강남 해운대구, 대구의 강남 수성구, 대전의 강남 둔산동, 인천의 강남 송도국제도시 등이 그것이다. 10만명의 인구를 간신히 넘나드는 작은 규모의 시에도 ‘강남’이라 불리는 지역은 대개 존재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강남’은 단순히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수많은 지역의 더운 욕망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이전만 해도 강남은 농촌이었다. 모래사장이 즐비한 잠원동에는 단무지 밭이, 압구정동에는 배나무 과수원이 많았다. 강남 사람이 ‘서울’에 가려면 한강인도교나 광진교까지 걸어가거나 배를 타야 했다. 강남의 폭발적인 개발은 이후의 일이다. 산업화 여파로 서울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고, 특단의 확장 대책이 필요했다. 그다음 이야기는 몇 배속으로 재생하는 동영상처럼 빠르고 비현실적이다.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불과 2년9개월 만에 개통된다.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거치며 강남은 더욱 성장했고 지금은 신기루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며 모든 이들의 욕망을 끌어당기고 있다.

그러므로 강남에 대한 잡지를 만들려면 급격한 개발을 이해해야 했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에 무려 77명의 사망자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열악한 현장 상황에서 밤낮으로 공사에 매달리던 인부와 기술자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은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금강휴게소 근처에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유가족들은 매년 위령탑 앞에서 추모제를 지내며 눈시울을 붉힌다. 공사도 좋고, 성장도 좋지만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많이 죽어야 할 만큼 빨랐어야 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 죽음에 충분한 애도를 표했을까. 1994년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 위령탑은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강변북로 진입로 인근에 있다. 이듬해 있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위령탑은 걸어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양재시민의숲에 자리한다. 참사 장소에는 대통령 내외가 살 정도로 최고급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고, 사고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관은 경기도 포천시에 있다. 책상에 앉아 원고를 읽는 것만으로는 이 괴이한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금강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고속도로 통로박스를 지나 한동안 걸어가니 위령탑이 나왔다. 흰 탑에 박힌 검은 돌판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세상에 금옥보다 더 고귀한 것은 인간이 가진 피와 땀이다. (중략) 그들은 실로 조국 근대화를 향한 민족 행진의 산업 전사요 자손만대 복지사회 건설을 위한 거룩한 초석이 된 것이니 우리 어찌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은혜와 공을 잊을 것이랴.”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나는 그 글을 거듭 읽었다. 문득 손가락으로 만져 본 검은 돌판은 차갑고 쓸쓸하고 단단했다.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