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을 넘어서야 한다

입력 2025-03-05 00:50

윤 대통령 결사옹위 매달리면
중도층 지지는 점점 멀어져

보수 분열 막고 상대 실수
기대하는 정치공학으로는
조기 대선 승리 장담 못해

제왕적 대통령제 뜯어고치고
정치개혁, 언행일치, 통합
실천할 후보를 내세워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여당의 의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때까지만 유효하길 바란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을 반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리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헌법재판관들을 처단하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집회까지 찾아가 극단적 지지층을 독려하는 것은 중도층의 등을 돌리게 할 뿐이다. 헌재의 탄핵심판 절차와 진행 과정에 문제가 없지 않지만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발동하고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윤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예상하는 것이 여론과 상식에 부합한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결사옹위에 매달리기보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헌재가 앞으로 열흘에서 보름 사이에 윤 대통령을 파면한다면 대선은 5월에 치러야 한다. 국민의힘이 지금처럼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대선은 보나 마나다.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전직 대법관과 현직 부장판사 등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대통령을 두둔하는 정당이 조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사로잡혀 군을 동원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산 서버를 떼오라고 지시한 대통령을 당원으로 둔 정당이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리 만무하다.

국민의힘이 믿는 건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보수 진영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 후보를 낸다면 조기 대선도 해볼 만 하다는 계산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의 헛발질에 따른 반사이익 기대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41.1%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지만,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24.0%), 국민의당 안철수(21.4%), 바른정당 유승민(6.8%) 세 후보의 득표율 합계(52.2%)에는 못 미쳤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6.2%)을 보태더라도 진보 진영의 득표율은 47.3%로 과반이 안 됐다. 대선이 본격화되면 보수층이 뭉치는 데다 더불어민주당의 횡포를 견제해야 한다는 중도층이 가세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국민의힘은 기대한다. 그러나 내부 단합과 상대 실수를 노리는 정치공학만으로 대선을 치른다면 유권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심각하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대부분 개인 비리였다. 반면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내란이다.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군을 동원했다는 낙인이 찍힌 대통령을 비호하는 정당 이미지를 벗지 못하면 국민의힘에 미래가 없다.

헌재가 윤 대통령을 파면하면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과의 관계부터 청산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으면 즉각 제명이나 출당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윤석열정부의 공과를 모두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비상계엄을 함부로 발동할 만큼 권력 남용 소지가 큰 지금의 대통령제는 손봐야 한다. 헌법을 고쳐서라도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대폭 축소하고, 국회의원 공천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과감하게 위임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반성문을 써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과 차떼기 당 이미지 속에 2004년 총선을 치르면서 천막 당사를 차린 한나라당 시절보다 더 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여당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도자를 내세워야 한다. 윤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부터 당무 불개입 선언,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여러 정치개혁을 약속하거나 추진했지만 실천한 것은 없었다. 윤 대통령이 헌재 변론 최후 진술을 통해 “대통령직에 복귀하면 임기 단축과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진정성이 의심된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직후 국정 수습을 위해 찾아온 여당 지도부에 조기 퇴진을 약속했다가 이를 뒤집어 이미 말의 신뢰를 잃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인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 야당 대표와 대화하기는커녕 걸핏하면 여당 대표를 내쫓은 윤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분열과 대립을 자제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 시늉을 내고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하는 등 민주당이 점령군 행세를 하자 여론이 잠시 국민의힘을 동정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일시적인 여론조사를 과신하고 방심한다면 8년 전 탄핵 직후보다 더 처참한 보수 괴멸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건 국민의힘에 달렸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