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집트관은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들이 ‘오픈런’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집트관 초대 작가는 영상, 설치, 회화 등 총체적 예술을 하는 와엘 샤키(54)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 9월부터 2월 중순까지 한국의 공립미술관인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전국의 미술 애호가들이 대구를 찾았다. 국내서도 익숙한 이름이 된 와엘 샤키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개인전을 한다. 대구미술관 개인전을 놓친 미술 애호가라면 아쉬움을 달랠 만하다.
대구미술관 개인전이 소문 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금도끼와 은도끼’ ‘토끼의 재판’ ‘누에 공주’ 등 한국 전래동화에서 소재를 가져온 데다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이 이를 소개하는 퍼포먼스 영상을 펼쳐서다. ‘러브 스토리’라는 제목의 작품에는 판소리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반전 영상으로 처리됐다. 사람의 얼굴을 실루엣으로 처리함으로써 관객이 판소리 그 자체, 그리고 인물 뒤로 펼쳐지는 한국의 풍광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바라캇컨템포러리 갤러리 개인전은 작가의 초창기 작업에 집중한다. 30∼40대 시절의 초기 작업이 나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현재 작업의 근원을 추적해 볼 수도 있다. 1971년생인 샤키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1970년대 석유 산업으로 국가의 부를 축적하며 전문가의 이민을 장려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부모와 함께 이주했다. 베두인족을 비롯한 토착 유목민의 전통과 급속한 현대화의 물결이 공존하던 메카에서 보낸 유년시절은 훗날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샤키의 작업 세계에 자양분을 제공한다.
바라캇컨템포러리 갤러리 개인전에 나온 영상 작업들은 모두 이주를 공통분모로 한다. ‘동굴(암스테르담)’은 작가 본인이 국제도시 암스테르담의 한 대형 슈퍼마켓에서 쿠란의 구절 가운데 ‘카흐프의 장(동굴의 장)’을 암송하며 걷는 모습을 담았다.
이 연작에는 초국적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대형 슈퍼마켓 진열대를 배경으로 작가가 등장한다. 2004년 이스탄불 편을 시작으로 함부르크 편, 암스테르담 편까지 세 편이 만들어졌다. 상품이 무수히 쌓여있는 슈퍼마켓 안에서 사람들은 쇼핑하고 점원은 일한다. 노타이의 정장 차림을 한 작가는 TV 리포터가 뉴스를 전하듯 쿠란의 구절을 빠른 목소리로 암송한다. 마치 자신의 뒤에 펼쳐진 배경의 장면을 설명하듯이 말이다.
이 장면은 대구미술관에서 판소리 명창이 병산서원 등을 걸으며 전래 동화를 판소리 창으로 전하던 것과 오버랩 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대구미술관의 판소리든, 바라캇컨템포러리 갤러리의 동굴이든 모두 화자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이슬람교 경전인 쿠란에서 ‘동굴의 장’은 이주의 메타포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사우디아라비아로, 미국으로 이주하며 살아온 온 작가의 개인사이자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이주한다. 내 땅에서 살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 지식과 힘을 얻어야 한다. 이주는 인류가 흘러온 방식이다.”
‘텔레마치’ 연작은 사막 문화를 배경에 깔고 있다. 그 중 ‘텔레마치 셸터’는 사막 어딘가의 진흙 오두막으로 아이들이 개미처럼 끊임없이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우화 같은 이 장면은 유목과 정주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인간의 삶의 양태를 환기한다.
‘텔레마치 사다트’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전 대통령 암살 사건 및 장례식을 베두인족 어린이들이 재현하는 작품이다. 그가 어린이를 자주 등장시키는 이유는 뭘까. “어린이는 역사를 잘 모른다. 어떤 트라우마도 없다. 표정을 갖지 않아 배경을 객관화 시킨다”고 그는 설명했다.
작가는 때로는 마리오네트 인형을 행위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판소리에서 등장 인물의 영상 이미지를 반전시켜 표정을 거세시킨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인간의 끊임없는 이주, 그런 가운데서 만나는 전통과 현대의 충돌과 뒤섞임을 독자적인 영상언어로 표현하는 와엘 샤키의 개인전은 4월 27일까지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