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호소용이며, 평화적이었다”

입력 2025-03-05 00:37

윤석열 대통령의 진의(眞意)는 사후의 설명과 해석을 필요로 한다. 자주 말한 ‘반국가 세력’이 무얼 지칭하는지 수개월 뒤 기자회견에서도 질문이 나왔다. 1시간 의료개혁 대국민 담화 뒤엔 ‘2000명’이 절대 수치는 아니며 대화를 강조한 의미라고 관계자가 추가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비상계엄 선포의 속뜻 정답은 호소용 계엄, 평화적 계엄이라는 것이다. 너무 큰 뜻은 전해지지 않는 것일까, 애초 없는 것일까. 계엄 직후 단번에 그 정답을 언론에 말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국무회의보다 실질적 토론이 오갔다던 계엄의 밤에, 대통령이 장관들에겐 ‘호소용’ ‘평화적’ 정답을 공유했는지 늘 궁금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헌법재판소 증인신문을 보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통령 측은 계엄을 반대했다는 한 총리에게 “만약 당시 대통령이 계엄의 목적을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면 다른 입장일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대통령 측은 “계엄을 선포하며 호소용 계엄이란 사실을 사전에 밝힐 수는 없었던 것이죠”라고도 말했는데, 한 총리는 질문이 아니라 여겼는지 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대통령의 국정 방식은 새벽 승합차 안에서야 수사관들에게 압수수색 장소를 밝히는 검사의 전략 같다. 은밀한 결단과 단계적 보안은 성과로 이어졌을까. 망국 상황을 알릴 목적이 달성됐다고 자평했으나, 대통령은 영어의 몸이고 정책은 멈췄으며 아무래도 신난 쪽은 ‘반국가’들이다. 대통령의 말대로 많은 국민이 지금 진심을 이해한다면 이를 사전에 국무위원들에게 설득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계엄은 민주당 머릿속에나 있다”고 적은 기자조차 자괴감을 느낄 때, 사후에 “비상사태입니다” 문자나 보내던 참모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다.

진의를 묻는 이들에게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으므로 냄비 속 개구리의 위기를 알았다고 답한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 이유는 대통령만 알 수 있었다”는 식의 설명은 달리 서술할 길이 없을지언정 동어반복에 가깝다. “그 길밖에 없다”며 논증이 불허된 곳에 남는 것은 흑백논리뿐이며, 독점된 진리를 그대로 따라야 계몽인 건 아니다. 반지성주의를 배격하고 과학을 상찬한 대통령이었다. 계몽을 가장 권위 있게 말할 칸트는 그 용어를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의 의미로 썼다. 칼 포퍼에 따르면 과학과 ‘열린 사회’의 기본 태도는 “내가 잘못이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는 지적 겸허다.

계엄 이후엔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 헌법재판 단계마다 절차적 불공정이 말해졌다. 목적이 수단까지 정당화하느냐는 자성은 우리 사회가 탄핵의 터널에서 주워가야 할 교훈이다. 다만 이는 계엄 자체를 두고도 가능한 물음이다. 야당의 폭거를 알리고 부정선거 의혹을 말할 수단이 정치가 아닌 정치의 금지가 돼야만 하는 이유를 정치하는 이들도 얼른 말하지 못했다. “줄탄핵 등 야당의 발목잡기 지적에 공감한다. 하지만 장갑차와 헬기는….” 대국민 담화나 영수회담 발언이었어야 했다는 한탄은 여당 의원들 틈에서 나온다.

모두가 꿈꾸듯 겨울을 보냈다. 민주주의의 원리부터 형사 절차에 이르기까지 많은 개념이 각자의 뜻으로 풀이됐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거리의 인파가 역사의 평가를 부르짖었다. 기자는 어려운 말들을 모르지만 괴로워하는 이들의 모습만은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으로 대통령을 돕고 의미를 부여하던 이들이 수없이 머릿속 시계를 12월 3일 이전으로 돌리고 있었다. 호소용이며, 평화적이었을 것이다. 민(民)을 버리면 민이 버리던 이 나라의 진의도 마찬가지다.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