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젤렌스키의 지지율

입력 2025-03-04 00:40

2019년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얻은 득표율 73%는 놀라운 수치였다. 1991년 독립 후 선출된 여섯 대통령 득표율이 대부분 50%대에 머물던 나라에서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 신인에게 압도적 지지가 쏟아졌다. 그만큼 기존 정치판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이 많았음을 뜻한다. 친유럽과 친러시아로 갈라진 의회에선 권투 같은 주먹다짐이 일상이었고, 그런 정치가 부른 사회적 갈등과 분열에 다들 지쳐 있었다.

모처럼 국민적 결집을 이루며 당선돼 총선까지 압승했지만,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도 큰 법이라 대통령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2020년 50%, 2021년 30%대로 떨어졌다. 러시아가 쳐들어온 건 그렇게 분열이 자리 잡아가던 2022년 2월이었다. 젤렌스키는 도망가지 않았고, 항전을 호소하는 그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인은 다시 뭉쳐 90%에 육박하는 지지를 보냈다. 국가적 위기에 나타나는 국민 통합 효과의 수명은 나라마다 다른데, 우크라이나의 경우 2년이었다. 2023년까지 80%를 웃돌던 젤렌스키 지지율은 지난해 60%대로 떨어졌다. 장기전 피로감, 대반격 실패, 전격적인 총사령관 해임 등의 요인이 맞물렸다. 전선을 지키는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여전히 90%대인 상황에서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원성이 젤렌스키를 향했다.

올해 들어 57%로 내려앉은 그의 지지율은 최근 다시 급등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독재자”라 부른 직후 65%로 뛰었고, 지난주 ‘백악관 충돌’ 이후 야당 정적들까지 젤렌스키를 응원하고 나섰으니 지금은 더 높아졌을 듯하다. 이러다 러시아에 지고 만다는, 트럼프와 푸틴의 거래에 나라가 위태롭다는 위기감이 우크라이나인을 결속케 했다.

위기가 닥쳐야 단결하는 게 최선일 리는 없겠지만, 위기가 닥쳐도 분열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대통령이 없는 지금의 한국도 분명 국가적 위기인 듯한데, 여의도 정치와 광장의 시민이 저마다 갈라져 있다. 아직 제대로 된 위기가 오지 않은 건가….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