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상법·자본시장법 개정… 소액주주 분통

입력 2025-03-03 18:26 수정 2025-03-03 18:27
박찬대(왼쪽에서 세 번째) 원내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상법개정안 상정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 제도 개선은 여야 간 공방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처음에는 상법 개정에 군불을 지폈으나 재계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핀셋 규제 방식인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야당은 여전히 상법을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주주 보호라는 본래 목적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3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총수(대주주)뿐 아니라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도 애초 이 방향에 공감했지만 재계 측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해 하반기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입장을 틀었다. 정부가 제안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핀셋 규제 방식이다. 상장회사의 이사회가 합병·분할을 할 때 “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기업이 물적 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할 때는 모회사 일반 주주에게 공모 신주 20%를 우선 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금융투자업계 등에선 상법 개정으로 주주와 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주친화적 경영 유도가 주식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점은 밸류업 관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재계는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주주로 확대되면 이사들이 배임죄 등 소송 위협에 시달려 정상적인 경영 판단을 할 수 없고,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가능케 해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표류하는 사이 지난해에도 소액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안과 고려아연 유상증자, 한미사이언스 형제·모녀 갈등, 오스코텍 중복상장, 이수페타시스 공시 번복 등이 대표적이다.

HL홀딩스(옛 한라그룹)는 지난해 11월 자사주 47만193주를 존재하지 않는 재단에 무상으로 넘기려다가 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HL홀딩스는 결국 무상 출연을 취소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은 “대표적인 한국 기업들의 지난해 이사회 안건을 보면 이사의 충실 의무가 적용되는 건 1~2% 정도”라며 “쪼개기 상장 등 주주가치를 훼손할 때 이 규정이 적용되는 것이지 일상적인 경영에 있어선 전혀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