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거 둘러싼 암투… 숨 막히는 바티칸 스릴러

입력 2025-03-03 18:46
‘콘클라베’는 레이프 파인스를 비롯한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와 세련된 연출, 몰입감을 높이는 미술과 음악 등으로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다. 엔케이컨텐츠 제공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콘클라베(Conclave)를 총괄하게 된 추기경 로렌스(레이프 파인스)가 연단에 올라 말한다.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하는 콘클라베는 가톨릭 교회에서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를 뜻한다.

교황이 선종하면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전 세계에서 소집된다. 선거가 진행되는 시스티나 성당은 이 기간 폐쇄되고 추기경단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교황을 뽑는 투표를 진행한다. 한 명의 후보자가 과반의 표를 얻을 때까지 투표는 계속된다.

평소 교황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로렌스는 애도의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새 교황 자리를 둘러싼 정치 암투와 의심, 추문을 마주한다. 추기경들은 출신 지역과 인종에 따라 파벌을 만들고, 신념에 따라 개혁파와 보수파로 나뉜다. 반대하는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한 투표 전략을 세우며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함정을 판다.


오는 5일 개봉하는 ‘콘클라베’(포스터)는 가톨릭 교회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물이다. 넷플릭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로 호평받은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신작으로 정치 칼럼니스트 출신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배경만 교회로 옮겨졌을 뿐 정치물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버거 감독은 성스러운 집단의 비밀스런 의식을 소재로 긴장감 넘치는 연출을 선보인다. 교회에서 금기시되는 요소들, 남성 중심 조직의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수녀들의 모습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등장인물들에게서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게 만든다. 결말이 주는 반전은 허를 찌른다.

불안과 고뇌, 의심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표현해내는 파인스의 얼굴은 관객들의 몰입을 이끈다. 그는 추기경단의 신임을 받아 콘클라베 단장을 맡았지만 자신도 추기경 후보에 오르며 시험에 든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역으로도 유명한 파인스는 이번 영화로 ‘잉글리시 페이션트’(1997) 이후 29년 만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투표 장면이 반복되고, 인물들의 대화는 은밀하게 오가지만 숨막히는 전개에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편집과 함께 상영시간 내내 흐르는 음악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빠른 속도로 연주되는 현악기 소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고전 회화를 연상시키는 듯한 색감과 빛의 활용이 오히려 스릴감을 고조시킨다.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과 제31회 미국 배우조합상(SAG)에서 앙상블상, 제 82회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한 ‘콘클라베’는 2일(현지시간) 열린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각색상·남우주연상·여우조연상·미술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색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러닝타임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