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청소년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9~24세)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2011년부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집계된 잠정치는 이미 2023년 동기간의 수치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24년 일본의 전체 자살자 수는 2만268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초·중·고등학생 자살자 수는 527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고등학생이 349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 163명, 초등학생 15명 순이었다.
희망을 잃은 세대
미래를 책임질 다음세대가 자살로 무너지는 원인은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아키타현에서 만난 사토 히사오 NPO법인 아키타 자살대책센터 ‘쿠모노이토(거미줄)’ 이사장은 “사회정세를 보면 자살의 원인을 알 수 있다”며 “사회변화에 따라서 자살원인과 자살률도 변동적이다. 젊은 세대의 자살은 개인적 정신적 문제보다는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나라에서 나서서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토 이사장은 이어 “일본 내 히키코모리 인구는 160만여명으로 추정되는데 과도한 경쟁, 학업 스트레스, 불안정한 미래 등으로 인해 청소년과 청년들이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심화된 것”이라며 “특히 일본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회적 연결이 단절된 젊은이들이 고립된 것도 자살률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자조모임 통해 세상 밖으로
사토 이사장은 “자조모임 활성화를 통해 고립된 이들이 사회로 나오도록 돕고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 쿠모노이토는 거미줄이라는 뜻처럼 이카타현의 지역사회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사회적 관계망을 촘촘하게 형성해 자살예방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쿠모노이토는 2003년 ‘마음의 네트워크’라는 협력체계를 구축해 37개의 자살예방 관련 민간단체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정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국과 달리 민간이 중심이 돼 활동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2006년 일본의 ‘자살예방기본법’ 제정 이후 자살률이 꾸준히 감소해 일본 내 전국 자살자 감소율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젊은 층의 자살률 감소에 뚜렷한 효과를 보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아키타현은 2019년부터 젊은 세대를 위해 라인(LINE) 상담 등 온라인 상담 경로를 확대해 맞춤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살예방기본법 제정에 이어 정책 대안 마련에도 적극적이다. 일본 정부는 2023년 아동·청소년 정책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어린이가정청(こども家庭 )’을 출범했다. 저출산 문제와 함께 급증하는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어린이가정청 산하에 아동·청소년 자살예방 콘트롤타워 격인 10명 규모의 ‘자살대책실’을 신설해 자살문제에 즉각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사토 이사장은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적 과제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자살예방이 시작된다”며 “민관협력을 통해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을 극대화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간단체와 정부 등이 긴밀히 협력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아키타현의 모델을 한국에도 적용한다면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기대한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이라고 덧붙였다.
민관협력해 생명 살려야
실제로 한국 정부에는 자살예방 콘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 부처의 정책 분산 담당으로 인해 유기적인 정책 연계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살예방 예산 규모에서도 한·일 양국 간 격차가 크다. 2021년 기준 일본의 자살 대책 관련 예산은 약 8300억원, 한국은 약 450억원이었다. 일본 예산의 5.4%에 불과하다. 국내 전문가와 한국자살유족협회 등은 한국의 자살예방기본법 제정과 함께 자살유족센터 건립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조성돈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는 “한국 사회도 아키타 모델을 참고해 자살예방 정책을 개선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며 “청소년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예방은 단순히 생명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며 “청소년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아키타=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