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中, 자국 AI 기업인·전문가에 美 등 서방국 여행 피하라고 지시”

입력 2025-03-03 02:02
중국 기술분야 기업과 좌담회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신화연합뉴스

중국 당국이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첨단기술 관련 자국 기업인과 연구자들에게 미국 등 서방 국가 여행을 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자국 전문가가 해외에서 기밀정보를 유출하거나 현지에서 구금돼 미·중 간 협상 카드로 이용될 가능성을 우려해 이같이 조치했다고 전했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경우 2018년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가 2년9개월 만에 풀려났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당국이 AI 전문가들의 서방국 여행을 전면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상하이, 베이징, 저장성 등 기술 중심지에서 이런 지침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AI는 물론 로봇공학처럼 전략적으로 민감한 다른 산업에서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주요 기업 임원이 미국과 그 동맹국을 방문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서방 국가를 방문해야 한다면 출국 전에 당국에 계획을 보고하고, 귀국 후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났는지를 또 보고하게 했다.

이 때문에 서방 국가의 초청을 거절하거나 방문 계획을 취소한 사례도 있다. 딥시크 설립자 량원펑은 지난 10~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AI 행동 정상회의에 초대받았지만 거절했고, 지난해 중국의 주요 AI 스타트업 설립자도 당국 지시로 미국 방문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술과 인재의 유출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위기관리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그룹의 신기술 분석 전문가 샤오멍 루는 “중국 당국이 미국 기업의 인수나 라이선스를 통해 국산 토종 기술을 잃거나 최근 부유한 중국인들이 해외로 이주한 것처럼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우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기술 자립에 박차를 가하면서 기업인들에게도 ‘국가적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달 17일 빅테크 기업인들과 좌담회를 열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해 달라고 주문했다.

WSJ는 중국 기업인이 유명 미국인과 공개적으로 교류하면 정부의 공식 정책에 어긋난다는 인상을 줘 당국의 조사를 받을 수 있다며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사례를 들었다. 마윈은 2017년 초 중국 고위 관리보다 앞서 첫 임기 시작 직전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는데, 수년 후 당국의 규제와 탄압 대상이 됐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