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비전교회(김남희 목사)는 오래된 주택들이 밀집한 경기도 오산의 구시가지 궐동에 있다. 한적하고 조용한 2차선 도로 옆에 있는 교회는 다음세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친다. 성도 100여명의 작은 교회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부모들에게는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을 제공하며 지역사회에 뜻깊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음 작은 영어도서관
오산비전교회는 2021년 ‘이음 작은 영어도서관’을 설립했다. 문화·교육적 혜택이 부족한 지역의 아이들에게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김남희(51) 목사는 “2019년 부임 당시 교회가 여러 상처로 인해 정체돼 있었고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기도 쉽지 않았다”며 “교회가 60주년을 맞이했을 때 세상을 향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며 비전을 제시하자 장로님을 비롯한 성도님들이 한마음으로 함께해 줬다”고 말했다.
‘다음세대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찾아오면 된다’는 야심 찬 포부로 영어도서관을 세우기로 하고 공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영어 전공자 한 명도 없이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도서관 운영을 총괄하는 김현경(44) 사모는 경기도 작은 도서관 협의회의 멘토링 지원을 받아, 사서 역할부터 프로그램 설계, 운영, 회원 관리까지 체계를 갖춰 나갔다. 또 지역에 돌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도서관을 기반으로 지자체의 지원 사업을 도입, 방과 후 돌봄 교실도 운영했다.
김 사모는 “자녀들이 교회 형·누나들을 선생님으로 만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외부 강사뿐만 아니라 미술·역사학을 전공한 교회 청년에게도 강의를 맡겼다”며 “중고등부 학생들은 보조 교사로 참여해 수업을 돕고 오산시자원봉사센터에 교회를 단체로 등록해 봉사 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권사들은 간식과 식사를 준비해 아이들을 먹였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지역의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안전하게 돌본 것이다.
서로이음 놀이교육공동체
교회는 놀이 기반 상담사 자격을 갖춘 전문 부교역자를 청빙해 아이들의 마음도 어루만졌다. 놀이 공동체 사역 담당인 조종은 부목사는 “놀이에 경쟁 요소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지만 상벌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청소년들이 협동과 연합을 경험하도록 비경쟁 협동 놀이 교육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관계 형성, 의사소통, 공감 능력을 키우고 건강한 자아 성장을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층 영어 도서관 밑 1층엔 지역 주민을 위해 열린 공간인 카페 ‘브릭스’가 있다. 이곳은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지자체의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인 ‘서로 이음 놀이 교육 공동체’의 학부모 활동 공간으로 활용된다. 김 목사는 “놀이 문화를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적용해 공예, 카드 지갑 만들기, 부부 소통, 관계 개선 프로그램 등을 함께하며 회복과 성장을 돕고 있다”며 “앞으로 놀이 상담연구소를 만들어 놀이를 활용한 상담과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작은교회도 할 수 있는 ‘아동 돌봄’
교회의 지역사회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가 자연스럽게 교회와 연결돼 하나님을 만나고, 가나안 성도 가정이 다시 교회에 나오는 열매로 이어지고 있다. 김 사모는 “방과 후 교실에서 만난 선생님을 교회에서도 만나며 아이들이 친밀감과 안정감을 더 느끼는 것 같다”며 “주일에도 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아져 예배 후 함께 마라탕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신앙 안에서 교제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번 겨울방학에도 아이들을 위한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동네에서 ‘좋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들이 ‘교회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그런 입소문은 다른 동네까지 퍼져 더 많은 아이가 찾고 있다. 또 독서 모임, 우쿨렐레, 영어 수업 등 지역 주민들이 다양하게 모이는 마을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화성오산교육청은 2023년 12월 오산비전교회에 거점형 주말 돌봄 교실 시범 운영을 제안했다. 이에 교회는 한 달간 시범 운영에 참여하며 운영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는 대형 교회가 아니더라도 아동 돌봄 등으로 지역사회를 섬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오산비전교회에 비슷한 고민을 나누거나 관련 상담을 원하는 작은 교회들도 늘고 있다.
김 목사는 “교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니 어르신들도 기뻐한다”며 “작은 교회라도 지역을 섬기고 아이들을 돌볼 때 세대가 어우러지며 교회가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한다. 앞으로도 교회가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산=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