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격하게 충돌한 백악관 회동 장면은 이제껏 우리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미국의 모습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안전 보장을 강조하는 젤렌스키를, 트럼프와 JD 밴스 부통령은 “무례하다” 비난하고 “고마운 줄 알라”면서 거칠게 몰아세웠다. 정상회담을 전면 취소하는 통에 젤렌스키는 백악관에서 사실상 쫓겨난 셈이 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푸틴 편에 섰다는 점이다. 젤렌스키 면전에서 전쟁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식의 언급을 다시 꺼냈고, 회동 후에는 젤렌스키가 물러나야 한다는 의중도 감추지 않았다. 모두 푸틴이 주장해온 것들이다. 외신은 “이 회동의 최대 승자는 푸틴”이며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팔아먹은 셈”이라 분석했다. 트럼프는 전쟁의 피해국 대신 침략국, 동맹국 지도자 대신 강대국 독재자 편으로 미국을 옮겨놓고 있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맞섰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무시하고 러시아와 친해져 얻게 되는 이익을 자유·민주·동맹 등의 가치보다 우선하는 초강대국의 돌변은 그동안 상식이라 여겨지던 세계 질서의 와해를 뜻한다. 유럽은 충격 속에 “미국이 자유 진영 리더 자격을 잃었다” “이제 적대적 강대국 셋(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며 긴급 정상회의를 열었다. 미국의 힘에 안보를 의지하던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을 제외한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격변으로부터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안보와 경제 모두 미국과 밀접히 얽힌 터라 더 큰 충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달부터 트럼프가 예고한 관세 전쟁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한 달 유예했던 멕시코 캐나다 중국 제품 관세의 강행을 선언했고, 목재 관세를 새로 꺼내들었다. 철강·자동차·반도체 관세, 국가별 상호관세도 내달부터 본격화한다. 모두 우리 산업에 악영향을 줄 사안인 데다, 협상용이 아닐 가능성이 점점 커지면서 증시와 환율에 벌써 타격이 시작됐다. 만약 안보와 대북 문제에서 우크라이나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관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파가 닥칠 것이다. 대통령이 없다고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