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보이지 않는 둔덕들

입력 2025-03-03 00:38 수정 2025-03-03 00:38

모두가 촬영 장비를 손에 쥔 시대에 대형 사고의 찰나는 자주 기록된다. 지난달 1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일어난 여객기 전복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쪽 랜딩기어가 먼저 활주로에 닿고 같은 쪽 날개가 화염과 함께 부러지면서 뒤집히는 순간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불에 타고 한쪽 날개가 떨어져나간 처참한 여객기 잔해를 보고 인명 피해가 컸을 거라 생각하기 쉬웠지만 기적처럼 사망자는 없었다.

한국에서 해당 사고를 접한 이들에겐 두 달여 전 무안공항에서 있었던 사고가 자연스레 포개졌을 것 같다. 다른 점이라면 착륙 전까지 별다른 위험이 없어 보였던 토론토 사고와 달리 두 개 엔진을 모두 잃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활주로에 비교적 무사히 내려온 무안 사고가 기적이 아닌 비극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과 충돌 전까지 여객기를 통제하려는 듯 팔을 뻗은 조종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더욱 안타까웠던 건 그 때문이다.

토론토 사고가 비극을 환기시켰지만 179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무안 제주항공 참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껴가 있다. 전례 없는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에 쏠린 시선의 영향이겠지만 불과 두 달여 전 참사가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아직 콘크리트 둔덕이 만들어진 이유, 사고 항공기와 관제탑 간 교신 내용, 국제선 데일리 취항에 따른 준비 상황 등에 대한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그나마 있는 뉴스도 묻히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지금 우리 사회가 참사의 책임을 제대로 나누고 있나 하는 의문을 더욱 키운다. 지난달 광주시가 무안공항 폐쇄 이후 어려움을 겪는 지역민과 관광업계를 이유로 광주공항의 국제선 임시운항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공식화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무안군의회와 지역 시민단체가 광주의 국제선 임시운항 추진에 반발하고, 무안공항 조기 개항과 정상화를 촉구했다. 2007년 무안공항 개항 이후 국제선이 중단된 광주공항은 군 공항 이전을 둘러싼 이견으로 무안공항과의 통합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아직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는 콘크리트 둔덕이 그대로 있고, 수사기관과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합동 현장조사가 지난달 26일 처음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노선 및 공항 운영 재개를 둘러싼 논란은 이르다 못해 무책임하다. 더욱이 무안공항은 탄생부터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역 간 마찰은 더욱 아쉽다. 2004년 감사원이 경제성을 문제 삼은 공항 3곳 중 당초 계획대로 완공돼 운영 중인 곳은 무안공항이 유일하다. 김제공항은 사업이 취소됐고, 울진공항은 비행훈련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형 사고는 구조적·간접적인 원인부터 직접적 원인들이 서로 맞물릴 때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 사고도 가깝게는 조류 충돌, 콘크리트 둔덕처럼 눈에 보이는 것부터 멀리는 공항 추진 과정에서의 문제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등을 면밀히 살피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국비로 추진되는 여러 사업이 경제성 논란에 그치지 않고, 안전문제로 이어지는 상징적 사건일 수도 있다. 이는 특정 지역의 문제만도 아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법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8일째인 지난 1월 5일 유가족 대표는 정치인들 뒤에 선 공무원들을 앞으로 불러 고개를 숙였고, 공무원들도 맞절로 화답했다. 참사의 슬픔과 무력감이 가득한 상황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사고를 잊지 않고,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둔덕은 없는지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