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질투하는 심리가 물리적인 통증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육체는 정신의 영향을 받고, 정신 또한 육체의 상태에 따라 변화한다. 현대 의학은 이러한 연결성을 탐구하며 ‘사이코소매틱스(psychosomatics)’란 주요 분야를 발전시켰다. 이는 신체적 증상이 정신적·심리적 요인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불면증을 생각해보자. 스트레스가 극심한 날에는 잠들기 어려워지는데 그러면 다음 날의 집중력과 신체 활동에 지장을 준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스트레스가 위장 기능을 방해해 체하거나 소화 불량을 일으키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 가족 구조 내 시댁과의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며느리 가운데 기능성 위장 장애를 앓는 사례가 꽤 됐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병들기 마련이다.
사이코소매틱스 질환 중 대표적인 예는 기능성 위장 장애다. 기질적 문제가 없음에도 스트레스로 인해 체하거나 소화가 되지 않아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다. 짜증이나 불안이 위장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상이 장기화하면 식도 손상과 체중 감소 같은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만성 두통과 목 통증이다. 뒷골이 당기고 어깨가 단단히 굳어 끊임없는 두통에 시달리는 경우다. MRI나 CT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도 증상은 분명히 존재하며 환자는 지속해서 고통을 호소한다.
사이코소매틱스 질환의 배경에는 ‘일차 이득’ ‘이차 이득’ ‘삼차 이득’이 얽혀 있을 수 있다. 일차 이득은 심리적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체 증상으로 심리적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갈등 상황에서 두통이 생기면 환자는 스트레스를 피하거나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런 신체 증상은 갈등을 직면하지 않고도 심리적 평온을 유지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반면 이차 이득은 신체 증상으로 주변의 관심이나 도움을 받을 때 발생한다. 시어머니의 심한 간섭을 받는 며느리가 두통이나 위장 장애를 호소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위로, 병가 등의 이점은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이런 증상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삼차 이득은 환자 자신이 아닌 제삼자가 이득을 얻는 경우다. 의료 제공자나 가족이 환자의 질환으로 자기 역할을 강화하거나 상황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의 병세를 과장해 가족 구성원이 경제적이나 사회적 이득을 얻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이득 구조는 환자가 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들 이득이 얽힌 사이코소매틱스 질환은 약물치료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신체 증상이 아닌 정신적 원인을 다뤄야만 치유로 나아갈 수 있다. 가족 간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환자는 근육 긴장과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스트레스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연결될 수 있다. 또는 자신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요청일 수 있다. 꾀병이 아니라 신체가 정신적 고통을 반영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으므로 환자의 심리적 상태와 환경을 함께 살피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신체 건강만큼이나 정신과 심리적 건강이 중요하다. 노년기에는 상실 외로움 불안 같은 심리적 문제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쉽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정서적 지지와 영적 안정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신체는 마음의 거울이며 마음은 영혼의 울림이다. 결국 전인적(holistic) 접근만이 참된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는 성경 말씀은 정신과 육체, 영혼이 조화롭게 건강할 때 삶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일깨운다. 육체가 아프면 마음을 살피고, 마음이 아프면 몸을 돌아보는 통합적 치료가 필요하다. 우리는 신체와 정신, 영혼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존재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는 삶을 추구할 때 진정한 건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의학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