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에서 외국 정상이 방문할 때 진행되는 기자회견에는 두 가지 형식이 있다. 공식 기자회견(press conference)과 약식 기자회견(press availability)이다. 공식 회견은 사전에 조율된 형식으로 진행되며, 양국 정상이 기자실에 나란히 서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질의응답이 오간다. 약식 회견은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 벽난로 앞에 양국 정상이 오붓이 앉아 일부 풀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회견 형식이 다른 것은 미국이 상대국을 다루는 방식에 온도 차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영국, 중국 등 주요국 정상이 방문할 때는 공식 회견으로 예우를 갖추지만, 약소국 대통령이 방문할 때는 약식 회견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공식 회견과 약식 회견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 전자는 정상들끼리 의례적 답변을 조율하는 경우가 많아 불필요한 논란을 줄일 수 있지만, 내용이 무미건조하다. 이에 비해 후자는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질의응답이 가능하지만, 외교적 결례 위험이 크다. 김대중 대통령도 2001년 3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 뒤 오벌 오피스 회견에서 수모를 당한 적이 있다. 부시가 김 대통령을 ‘Mr. president’ 대신 ‘This man’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갓 취임한 부시에게 빌 클린턴의 대북 포용정책 계승을 종용한 게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회견 형식이 원인 제공을 했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일대 설전이 벌어진 약식 회견은 ‘This man’ 사건은 약과로 느껴질 만큼 외교 참사 그 자체였다. 트럼프는 JD 밴스 부통령과 함께 미국의 군사 지원에 감사하지 않는다며 젤렌스키를 추궁했고, 젤렌스키도 질세라 미국의 친러정책을 문제 삼았다. 이후 정상 오찬마저 취소됐다는데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독일 철학자 헤겔의 가르침을 새삼 상기시키는 사건이었다. 한국도 미국과 원만한 외교 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