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어두워지는 시간

입력 2025-03-03 00:34

해 지는 시간에는 바깥에 있는다. 서쪽 하늘에 붉은 해가 넘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는 편이다. 사위가 점점 더 어두워져갈 때, 어두운 사람의 어두웠던 표정이 활기를 띤다. 지구가 자전을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기분도 그럴 듯하거니와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얼마쯤은 휴식으로 접어들 것이 반갑기도 하다. 유년기에는 이 시간을 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는 데에 다 썼다. 해가 져서 방안이 컴컴해지는 것도 몰랐다. 홀연히 책 바깥의 세상으로 돌아올 때 내가 몸담고 있는 장소는 낯설고도 새로웠다. 차차 이 기억은 내가 문학을 하며 살게 될 것을 약속하는 장면처럼 돼 갔다.

유형진의 시집 ‘피터래빗 저격 사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어두운 방의 하얀 테두리를 좋아하였다. 문을 닫으면 깜깜한 방의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의 테두리.” 방문 테두리를 타고 바깥의 불빛이 새어들 때까지 시인 될 작은 아이는 방의 불을 켜지 않고 무얼 하고 있었을까. 책을 읽었든 아니든, 다른 세계에 머물다 자기 방으로 홀연히 돌아온 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제법 따뜻해진 날씨 탓에 벤치에 앉아 이제니의 ‘새벽과 음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유년 시절을 불러들이는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별빛을 받아 부서질 듯 위태롭게 반짝이는 밤바다를 어두운 다락방 창틀에 턱을 괴고 앉아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바라보던 날들.” 어린 시인의 피로와 열망이 시인의 고향 거제도의 파도가 돼 나에게 밀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한 시인의 탄생이 어둠과 함께 환하게 점등됐다.

나는 나의 어두운 표정을 좋아해본 적 없다. 영원히 좋아하게 될 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둠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무척 많다. 가장 잘 이해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고 끝없이 말할 수 있다. 몰랐던 어둠의 몰랐던 농도에 손을 뻗으면서.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