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감사원이 진행한 직무감찰이 선관위의 헌법상 권한을 침해한 것이란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다만 헌재는 직무감찰 대상 배제가 부패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회 국정감사나 검찰 수사 등 외부 통제까지 배제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선관위가 자체 감찰 기능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재는 27일 선관위가 감사원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에서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이라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 헌재는 “헌법상 대통령 소속인 감사원이 선관위를 직무감찰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며 “이는 대통령 등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선관위를 독립 헌법기관으로 규정한 헌법 개정권자 의사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국회·법원 및 헌재 소속 공무원은 (직무감찰 대상에) 제외한다’는 감사원법에 선관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해당 조항은 예시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헌재 관계자는 “독립 헌법기관에 대한 감사원 직무감찰이 허용되지 않는 것은 헌법에서 직접 도출되는 내용”이라며 “입법을 통해 개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헌재는 선관위 특혜 채용 의혹 등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헌재는 “헌법이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 마련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헌재 선고 직전 감사원은 채용 비리에 연루된 전·현직 선관위 직원 32명의 비위 내용을 선관위에 통보했다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감사원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규정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관위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검찰은 지난해 4월 감사원의 수사의뢰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3월과 12월 송봉섭 전 선관위 사무차장과 김세환 전 사무총장을 재판에 넘겼다.
앞서 권한쟁의심판 변론에서 선관위 측은 “윤석열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은 정권 초기 때부터 시작됐다”며 “(직무 감찰에도) 부정선거 단서를 잡을 수 없었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선관위 장악을 시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원 측은 “감사원이 대통령 지시에 의해 움직인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 측은 지난 25일 탄핵심판 최후변론에서 “선관위를 견제할 유일한 기관은 국가원수 지위인 대통령뿐”이라고 주장했다.
헌법기관으로서 선관위의 자정 능력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독자적인 헌법기관끼리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게 민주주의 기본원칙”이라면서도 “선관위 내부 자체 감찰 기능을 마련하고, 시민 단체가 선관위 감시 기능을 맡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지호 성윤수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