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의과대학 정원을 조정할 때 객관적·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의료 인력 수급 추계위원회(추계위)’ 설치 법안이 27일 국회 첫 문턱을 넘었다. 추계위는 의사 단체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자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한 전문가 기구다. 법안에는 내년 의대 정원을 정부가 정한 범위 내에서 ‘대학 자율’로 조정할 수 있는 특례 조항도 담겼다. 추계위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심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만큼 내년 의대 정원은 각 대학의 선택에 맡겨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추계위 신설을 담은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후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았다. 정부와 의료계는 양쪽 모두 추계위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위원회 구성과 권한 등을 놓고 견해차가 컸다. 의사 단체들은 추계위 심의 결과가 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책에 반영되도록 ‘의결권’과 ‘독립성 확보’ ‘의사 추천 위원이 절반 이상’ 등을 주장해 왔다.
개정안에 따르면 추계위 인원은 15명 이내다. 위원 과반은 대한의사협회(의협)나 대한병원협회 같은 의료 공급자 단체가 추천하도록 했다. 나머지는 노동자 단체, 소비자·환자 단체 등이 추천한다. 위원회는 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된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별도 조항도 뒀다. 의료 인력 규모는 복지부 장관이 추계위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
개정안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의 경우 복지부 장관이 추계위에서 심의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정부가 정한 범위 내에서 대학 자율로 정원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도 대입입학전형시행계획은 오는 5월 발표되기 때문에 의대 정원은 늦어도 4월 말까지는 확정돼야 한다. 이 때문에 각 대학이 4월 30일까지 의대 모집 인원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증원분의 50~100% 범위’에서 대학 자율 모집을 허용했고, 실제 증원된 모집 인원은 1509명이었다. 올해 의대 학장들은 ‘증원 0명’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는 의결권을 제외하면 의료계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본다. 추계위에 의결권을 주는 건 지난 14일 공청회에서도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반영하지 않았다. 복지위 내에선 의사 단체들이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며 법 개정을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국민일보에 “의협이 사용자 단체라고 지적한 대한병원협회를 공급자 단체에 묶어 의료계 과반이라고 규정해 당초 (의료계) 요구에서 후퇴했다”고 말했다. 박단 의협 부회장은 페이스북에 “보정심에서 결정한 내용을 토대로 교육부 장관과 협의하는 구조라면 현행법과 같은 구조”라며 “목소리를 듣는 척만 할 것이라면 전공의, 의대생은 아무도 안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이정헌 이동환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