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데뷔한 걸그룹 어떤 매력
보여줄까… 조급해하지 말고
가능성 활짝 열 질문 던지길
보여줄까… 조급해하지 말고
가능성 활짝 열 질문 던지길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육하원칙은 ‘왜’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자주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일 정도다. 좋든 싫든 평론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당연한가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 현상, 결과를 만나면 다급한 손짓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는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이 생소한 풍경이 대체 왜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떻게든 납득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전달하는 방식과 언어는 쉬울수록 좋다.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비유나 형용사를 정확하고 빠르게 찾는 건 말과 글로 ‘왜’를 풀어내야 하는 전문가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다.
긴 겨울이 끝나고 비로소 봄이 기다리는 3월을 앞두고 가장 자주 들은 ‘왜’는 연이어 등장한 신인 걸그룹과 관련돼 있었다. 지난 24일 데뷔한 SM엔터테인먼트의 8인조 그룹 하츠투하츠(Hearts2Hearts) 그리고 다음달 정식 데뷔를 앞두고 선공개 싱글 ‘I DO ME’를 같은 날 공개한 5인조 그룹 키키(KiiiKiii)가 주인공이었다. 각각 에스파와 아이브라는, 지금의 케이팝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좋을 인기 걸그룹의 뒤를 잇는 후배 그룹들이니 세간의 주목이 쏠리는 것도, 그에 따른 질문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질문의 방향은 일관적일 정도로 같았다. “요즘 왜 이렇게 신인 걸그룹이 많이 데뷔할까요?” 질문을 받았으면 볏짚이라도 만들어 내놓아야 하는 게 전문직의 인지상정. 어떻게든 답의 모양을 갖추도록 재료를 끌어모았다. 실제로 대답할 거리가 전혀 없지도 않았다.
“글쎄요. 2020년을 전후해 데뷔해 케이팝 4세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걸그룹들이 3~5년 차에 들어서면서 슬슬 신인 그룹이 나올 시기가 됐죠. 지난 수년간 걸그룹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잘 만든 걸그룹에 대한 수요도 높아진 상태고요. 이 외에도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 음악 전반에서 여성 음악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요 몇 년 그래미를 비롯한 해외 음악 시상식 수상자 라인업 보셨죠? 지금은 여성의 이야기에 대중과 평단이 공감하고 호응하는 시대거든요. 케이팝이 한국 시장만을 겨냥하지 않는 요즘을 생각하면 더욱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죠.”
자랑스러운 일인지 부끄러운 일인지, 이다음도 ‘왜’에 대한 대답은 얼마든지 써낼 수 있다. 그것으로만 남은 지면을 전부 채우는 것도 어렵지 않다. 세상이 평론가에게 원하는 건 오히려 그쪽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제멋대로 평론가는 다른 육하원칙을 꺼내 들고 싶다.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이제 갓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그룹 하츠투하츠와 키키는 어떤 그룹이고 13명의 여자아이들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나요? 지금까지 공개된 콘텐츠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지향점은 무엇이고 이 그룹을 다른 그룹과 다르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말하는 사람 숫자만큼 다양한 길이 가능한 열린 문들. ‘무엇을’과 ‘어떻게’는 그런 갈래 길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유연한 질문들이다.
비단 케이팝뿐일까. 세상에 그런 열린 질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1분 1초가 아깝고 효율을 중시하는 세상에 너무 배부른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분명히 있을 테다. 이미 답이 정해진 일에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핵심만 파악하고 빨리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손목을 톡톡 두드리는 이들의 초조한 얼굴도 선하다. 그럼에도 잠시 고삐를 늦추고 느긋한 말투로 그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었나요?” 답이 없는 세상 속 끝없는 정답 사냥과 속도 경쟁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 곁에 잊힌 질문들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다행히도 아직 온기가 남은 질문을 쓰다듬으며 잠시 숨을 고른다. 누구나 납득할 명쾌한 답이 아닌, 나만이 알 수 있는 진짜 답은 분명 그곳에서 떠오를 것이다. 느리지만 선명하게.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