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 or 보기] ‘골프 우영우’ 이승민이 전하는 감동 스토리

입력 2025-03-01 02:39
이승민이 지난달 23일 중국 더듄스앳 선저우 패닌술라에서 막을 내린 2025 차이나투어 큐스쿨에서 13위로 합격해 시드를 획득한 후 엄지를 치켜세우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볼미디어 제공

국내 유일의 자폐성 발달장애 골프 선수인 이승민(28·하나금융그룹)이 올 시즌 중국 프로골프투어 출전권을 획득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골프 선수에게 있어 정규투어 출전권 획득은 어느 투어를 막론하고 고시 합격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승민이 거둔 쾌거는 감동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4세 때 자폐성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이승민은 밖에서 땀을 흘리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처음 배운 운동은 골프가 아닌 아이스하키였다. 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이 원한 데다 어머니 박지애씨도 아이의 사회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골프로 전향한 것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였다. 나이가 들수록 발달장애 특성상 단체 경기는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해 개인 운동으로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승민의 삶은 골프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180도로 확 바뀌었다. 장애 등급은 2급에서 3급으로 낮춰졌고 사회성과 친화력도 확연히 좋아졌다. 2017년에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정회원 자격을 획득한 뒤 2018년 KPGA투어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 등 작년까지 KPGA투어 5개 대회에서 컷을 통과했다.

뿐만 아니다. 2022년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는 제1회 US어댑티브오픈과 지난해 유럽 장애인 골프협회(EDGA)에서 주관하는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그러면서 세계 장애인 골프 랭킹(WR4GD)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프로골퍼 이승민이 있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손길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 박지애씨의 헌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들이 장애 판정을 받은 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죄인의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생각은 일단 뒷전으로 미루고 아이 곁에 있을 때 최대한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온전하게 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헌신이 알려지면서 어머니 박지애씨는 2022년에 모 언론사로부터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다. 마침 US어댑티브 출전 직전이었다. 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된 이승민은 장애인 US오픈으로 불리는 US어댑티브 우승으로 화답했다.

2016년부터 10년째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 오고 있는 하나금융그룹의 후원도 이승민에게는 큰 힘이다. 하나금융그룹은 패럴림픽에서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는 이승민의 꿈이 실현될 때까지 후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스윙코치 겸 캐디, 그리고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인 윤슬기씨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둘은 6년 전에 캐디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자폐성 발달장애의 특징 중 하나가 더러 공격적 성향을 보일 때가 있는데 윤슬기씨 앞에만 서면 순한 양이 된다.

이승민은 요즘 들어 자존감도 커졌다고 한다. 최근 들어 성적이 좋을 때면 “엄마 나도 이제 동생들에게 자랑스런 형이 된거지”라는 질문한다. 그는 차이나투어 퀄리파잉 3라운드를 마치고 나서 “못하면 동생들에게 창피한데…”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런 자존감이 시드를 손에 넣게 된 원동력이 됐다.

올해 차이나 투어는 총 25개 대회가 열린다. 이승민은 최선을 다해 내년 시드 유지를 목표로 잡고 있다. 또 초청 선수로 출전하는 KPGA투어 SK텔레콤오픈과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 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그의 꿈을 응원한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